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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Jul 05. 2024

탄생의 속삭임

'넌 이제 고생문으로 들어갈 거야, 아주 가끔은 천국도 맛보겠지만..'

13년 전 오늘, 오른손은 큰 아이의 손을 왼손은 커다란 짐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 앞 유치원 앞에서 뜨거운 포옹과 함께 오늘 '너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귓속말로 소곤거린다. 아이는 비장하게 유치원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고, 나는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을 1시간은 족히 넘을 듯한 마음의 시간이 흘러 도착했다. 나의 이 떨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하며 나에게 하나하나 권유하고 지시한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탓에 얼굴엔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박스형 원피스를 대충 걸치고, 간호사의 지시대로 자리에 눕는다. 내 팔에는 곧 여러 가지 주사줄이 하나씩 늘어가고, 이상한 그래프가 그려지는 기계도 내 머리맡에 놓인다. 30분 간격으로 간호사들은 그래프를 쭉 찢어서 어딘가로 가져갔고, 그 사이 나는' 올 게 왔구나' 느껴본 적은 있으나 익숙하지 않은 그 통증의 느낌을 즐겨보기로 한다. 아니, 이건 즐길 수 있는 통증이 아니다.

 "마취과 선생님 좀 불러주세요. 너무 아파요!"

곧이어 마취과 선생님이 오시고,

"아직이에요. 좀 더 있어야 해요."

'아니, 뭐가 아직이란 말이죠? 지금 아프다고요!"

30분이 더 지났을까? (사실 이때부턴 시간의 감각이 없다) 간호사가 급히 마취과 선생님과 함께 들어온다.

엎드려 새우등 자세를 취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지라 아주 정확하게 자세를 잡을 수 있다. 내 자세를 칭찬해 주시며,

"조금 아파요. 들어갑니다."

그 말과 동시에 엉치뼈 그 어딘가 위쯤인지에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몸살 기운이 심할 때 감기약 하나 먹으면 순간 온몸이 솩 노곤해지는 느낌? 그보다 조금 더 강한 이완감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한다.

'아, 살겠다.'는 개뿔,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무통 주사가 별 효과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넣었다고 했으나 잠시였을 뿐, 모든 통증을 다 느끼며 첫 번째 무통도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배가 축구공처럼 단단해졌다가 살짝 바람이 빠진 듯했다가, 다시 단단해졌다가 빠졌다가 한다.


시아버지가 적어 주신 아이의 사주가 생각났다. 그 시간에 만나야 하는데, 시계를 보니 이 방에 들어와 유도분만주사를 꽂기 시작한 지  5시간이 지났다. 아버님의 골든타임은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 최소 두 시간은 버티고 그 이후 두 시간 안에 만나야 한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마침 들어온 선생님께 여쭤본다.

"아직이죠?"

"이제 슬슬 열리기 시작해요. 곧 만날 수 있겠네요."

"예?? 벌써요?"

초조해진다. 아버님이 몇 날며칠 고민해서 정해주신 날짜다. 빨리 만나도 문제다. 이왕이면 그 어디 언저리에라도 가야 할 텐데.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무통 주사는 역시 나의 통증을 1도 줄여 주지 못했다. 머리칼을 쥐어뜯을 그 노무 인간도 옆에 없다. 첫째 때는 진통 중인 산모 밑에서 김밥 드시다 쫓겨난 시어머니라도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아니, 있고, 없고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통증에 얼마나 이를 앙다물었는지, 입술도 터지고, 입 안이 얼얼할 정도다. 그래프를 확인하러 오는 간호사의 발길이 잦아진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손이 수욱하고 들어 온다. '젠장할, 이게 제일 싫다고' 기습적으로 일어 난 일에 '하지 마세요!' 할 수도 없다. 그와 동시에 침대의 홀더가 풀리고 침대째 어딘가로 이동한다.

'이제 만나나 보다.' 시간은 포기했다. 통증이 심해지는 그 순간부터 시간 따위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그냥 빨리 끝나면 좋겠다. 이 통증이.

'아, 엄마. 엄마 보구싶다.'

이동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혼미해진 정신 사이로 간호사 둘이서 배 위 쪽을 밀어내고 있다. "더더더더, 다 됐어요. 조금만 더더더"라는 아득한 소리와 함께.

'오후 3시 십몇분, 3.45킬로 공주님입니다."

'다행이다. 시간 안에 나왔구나' 안도하던 차에 빨갛고 커다란 아기가 내 가슴 위에 놓였다.

'얘는 누구지? 왜 이렇게 못 생겼지?' 별 감흥이 없다. '내 아이 맞나? 너무 못생긴 거 아냐?'

첫 아이를 2.92킬로 뽀얀 아기로 만났던 나는 둘째의 빨간 얼굴이 도무지 내 아이 같지가 않았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간호사 두 분이 내 배위로 올라탄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눌러서 마치 아이 하나가 안 나왔다는 듯한 느낌으로 필사적으로 밀어낸다. 그렇게 내 아이를 감싸고 있던 모든 것들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진통보다 다 끝나고 무방비 상태에서 맞는 이 상황이 더 아팠다.


나는 애 낳고 걸어서 병실로 이동한 몇 안 되는 산모다. 첫째 때도 그랬고, 둘째도 마찬가지다. 앉는 게 더 힘들었다. 아이 머리가 조금 컸던지라 좀 더 꿰맸다는 말씀을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병실로 돌아오니 그 노무 인간이 있다. '어데 갔다 왔노, 인간아!'라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말도 안 나온다.

병실에 오고 얼마 후, 발목에 '아빠 이름과 엄마 이름의 아기'라는 핑크색 띠를 두른 조금은 낯선 아이가 바퀴 달린 트레이에 담겨 방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얼굴더룩 하얗게 붙어 있던 것들도 다 떨어지고 하얀 포대기에 번데기처럼 돌돌 말려서는 울지도 않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낯설지만 분명 내 아이가 맞는 그 아이를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아파서 아이 따위 생각하지도 못했던 나였는데, 그 고통은 벌써 아득한 과거가 되어 버렸다. 눈물이 흘렀다. 감동적인 아이다. 건강하게 태어나 주어서 너무 고마운 아이다.


나는 그렇게 둘째 아이를 13년 전 오늘 만났다. 눈 비비며 엄마에게 다가오는, 이미 엄마 키만큼 커버린 아이를 안아 본다. 빨갛던 아이는 집에서 가장 뽀얀 피부를 가진 피부미인이 되었다. 다음 달엔 3번째 아들이 13년전 오늘로부터 13개월 후 나올 예정이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잊어버리고 또 맞이한 아이들. 내 인생의 전부인 내 아이들. 오늘은 잔소리 말고, 사랑한다는 말만 해야지.

'제발 교복을 단디 걸어 주어야 할 텐데, 물통도 재빨리 내놓고, 딸아. 부탁한다!'

이 말이 언덕 넘어 학교에 있을 아이에게 텔레파시로 전달되길 바라면서! 케이크나 사러 가야겠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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