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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May 02. 2024

나의 '쾅섬' 탐험기


쾅이라는 섬이 있다.

레오 리오니 라는 작가의 동화책 <<작은 조각>>에 나오는 섬이다.

자존감 낮은 한 존재가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낸 섬.

나도 그 섬에 간 적이 있었다.


20 대 후반에 어떤 어른의 권유로 심리상담을 받았다.

밝고 활발한 성격에 가려진 나의 불안정함과 스스로 인식 못하는 낮은 자존감을 보셨던 것이다.

처음에는 문제아로 취급받는 것 같아 반감이 있었다.

상담자는 무뚝뚝하고 듣기만 하지 훈수 하나 두지 않았다. 게다가 회당 상담비가 8만원이나 했다.

열차 타고 버스타고 왕복 열시간 걸리는 그 일을 매주 한 번씩 몇 개월이나 해야했다.

그리고 그 내면작업은 동화의 작은 조각이  바위 꼭대기에서 떨어져 자신을 온전히 깨뜨리는 고통과 같았다.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뭐라도 건져야겠기에 심리에 관한 책을 사서 읽고 상담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해서 갔다.

(그 때 읽은 것 중에 기억나는 책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인데, 세 번을 통독하고야 무슨 말인지 겨우 감이 잡힐 만큼 딴 세상의 책이었다)


스스로 진단까지 하면서 상담하던 중에 상담자가 던진 한 마디에 '씨게' 한 대 맞았다.

"무얼 기대했어요?"

이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나 형제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데 무얼 기대했냐니?

그 질문만 하고 그날의 상담은 끝이 났다.

나는 숙제만 안고 집으로 와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간 내가 무얼 기대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인정받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나를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나는 그것을 받은 기억이 없었구나. 그래서 화내고 다투었구나. 화내고 다투면 해결될 줄 알았지만, 관계만 악화 되었구나.

그래서 무뚝뚝한 상담자에게 화가 나 있었구나.

그 후로 화가 나거나 불만을 느끼는 상황이 되면 '내가 무얼 기대했나?'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답은 뻔했다.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감.

나는 이 실망감이 공격성으로 변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위로하느라 애를 썼다.


'나의 기대'라는 것의 정체를 알고나니 나와 남의 경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팔 길이는 1미터도 되지 않는데 그동안 나는 내 팔이 장대만큼 긴 줄 알았다. 그래서 팔을 휘휘 저으면 상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는 내 팔이 다른 사람 팔과 연결 된줄 알았다. 내 팔이 뜨거우면 상대의 팔도 뜨거운 줄 알았다.

"네가 이렇게 했잖아!"

하고 소리치기만 했지, 그 일이 나를 어떻게 힘들게 했는지, 그 일을 다시 하지 말아달라던지...... 의 설명은 할 줄 몰랐었다. 상대의 행동을 지적하면 알아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도 똑같이 맞받아 칠 뿐이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내 팔과 남의 팔은 분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내 팔이 뜨거우면 뜨겁다고 말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내 팔로 옮길 수 있는 건 내 몸뚱이 뿐이라는 것을.


이렇게 나와 남을 분리할 줄 알게 되자 나의 존재감이 또렷해지고 논리력이 생겼다.

그렇게 되니 남의 말이나 행동을 무겁게 오래 들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어렸을때는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부탁을 거절받으면 '치사하고 좁은 애'라고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존재감과 논리력이 생기니 어려운 부탁에 대해 정중하게 거절할 있게 되었다.

"미안해, 그 일은 내 능력 밖이야. 나는 도와줄수가 없구나."

예전에는 거절을 하더라도 말을 돌려하거나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존재감이 또렷해지고 논리력이 생기니 간단명료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거절의 자책감을 달래줄 수 있었다.

'나는 평소에 남을 잘 돕는 사람이야. 지금 이 부탁은 내 능력 밖이고 즐겁게 해 줄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게 이 말을 하면 '비난받거나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심리 공부 덕에 20 여년 잘 버텨왔다.

예민하고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게 태어나서

인정받지 못하는 글나부랭이를 쓰면서도

몇 년째 노모라는 지옥에 갇혀 살면서 나들이 한 번 못하고

소통할 친구 하나 없이도

숨 쉬고 사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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