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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C Mar 04. 2023

기승전“그만둘까?”

단체 줄넘기 주전이 됐다. 준비가 안 됐는데 누군가 밀어 버리면 당황할 새도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뛰어야 한다. 넘어진다고 죽진 않겠지만 다친다. 함께 뛰는 동료에게 손해 끼치고, 원망 듣고, 지켜보는 이에게 야유받는다. 익숙해지면 즐기는 때가 올 수도 있지만 뛰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당장, 심적 부담이 크다. 어차피 잘하게 될 거, 왜 그래? 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뛰게 된 줄넘기 장소는 새로 출근하는 도서관이다.

      

새로 와 어리바리한 사서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서관은 굴러간다. 발맞춰 뛰어야 할 나는, 때맞춰 달려오는 줄(?)이 아닌 일에 당황하여 그만 삐끗했다. 나동그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하며, 이번 주 남편과 어떤 대화를 하든 “그래서 나 그만둘까?”로 받아치고 있다. 무슨 대화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TV 속 멋진 사람보다 우리 와이프가 더 괜찮다는 칭찬에도 ‘그럼 나 그만둘까?’ 남편 잘 만나 행복하지 않냐는 남편의 자화자찬에도 ‘그럼 나 그만둘까?’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도 아니다. 한 놈만 걸려라, 물고기 떼를 향해 입 벌린 커다란 고래처럼 연신 “그만둘까?”를 외치고 있다. 물론 0.1초 만에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겐 매달 성실 납부해야 할 대출 원리금이 있다.      


사실 도망치듯 그만두고 싶지도 않다. 그만두더라도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 이 자리를 밟고 일어선 후에 가볍게 ‘그만할게요’라며 퇴장하고 싶다. 그러나 막상 제대로 자리 잡으면 퇴사 생각은 쏙 들어가리란 것을 알고 있다.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는다는 사직서는 진짜로 던지기 위함이 아니다. 마치 퇴로가 있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나를 지켜주는 부적 같은 것이다. 그 어떤 위로보다 이 부적하나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에, 나는 계속해서 이 부적의 존재를 반복해 물으며 확인한다. “나 그만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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