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면 봄이 끝난 줄 알고, 이제 더워지겠다고들 아쉬워한다.
벚꽃이 절정이던 2주간의 주말 동안 나들이 가지 못한 채 봄비를 맞이한 나 역시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들은 져버린 봄으로, 나무에 남겨진 연두 잎들은 세를 확장할 여름으로 생각했다. 벚꽃이 사라짐과 동시에 강풍이 불자 다시 겨울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점심 먹으러 가는 길, 감탄을 안기는 끝나지 않은 봄 풍경이 있다.
몇 년 전 가시광선 전체를 가장 완벽하게 반사시키는 순도 높은 하얀색을 세상에서 찾는다면 바로 아파트 단지 화단에 핀 흰 철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A4 용지의 하얀색과 비교해 볼 때 철쭉의 하얀 빛에는 깊이감이 있다. 흰 철쭉이 모여있는 곳은 형광등을 켠 듯 환한데, 비가 오는 흐린 날이면 흰빛이 한결 더 부각된다.
냉한 사무실에 있다 점심을 먹으러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에 끝나지 않은 봄을 일깨우는 것도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철쭉이다. 철쭉은 산속 진달래와 모양이 비슷하면서도 도시 화단에 많다. 안암 고려대와 군포의 철쭉동산에 가본 적이 있는데, 동산을 붉게 물들인 꽃들이 단 하나의 하늘거림 없이 자기주장 강하게 모여있는 그 모습에 진달래와 같은 기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서관 근처에서 맛보기로 본 철쭉의 멋에 반해, 이번 주말 할머니를 모시고 떠날 강원도 여행을 앞두고 그곳의 철쭉을 기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여행길 비가 예보됐는데 기왕이면 하얀 철쭉들이 흐린 날씨 속 환하게 빛나 우리 여행을 기억에 오래도록 남겨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