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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울라 최 Apr 26. 2023

눈썹정리

이우환 <조응>

1. 처음 상대방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눈썹을 보게 된다.

눈썹이 잘 정리된 상대방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내가 좋아하는 차분하고 신뢰감 있는 눈썹. 


눈썹을 정리할 때.

한가한 공간, 거울 앞에 앉아 눈썹칼과 가위 그리고 잘린 눈썹을 받기 위한 티슈를 준비한다.

거울에 눈을 치켜들며 눈썹칼로 눈썹을 정리한다. 기다랗게 삐져나온 눈썹들은 가위로 잘라내며 눈가에 떨어진 눈썹들을 털어낸다. 그렇게 반복. 좌우대칭과 눈썹모양을 살피며 거울 안에 눈동자가 움직인다. 눈썹결 따라 매만져주면 마무리.


나를 바라보는 일.

나는 평소에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눈썹정리하는 시간은 유일하게 나를 또렷이 바라보는 시간이다. 

듬성듬성 정리되지 않은 눈썹을 발견할 때 나는 얼마나 불안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눈썹은 곧 절제.

눈썹을 정리하는 것은 감정이 잘 조절되고 있다는 것.

가지런하고 잘 정리된 눈썹은 적당한 선을 잘 걷고 있다는 것. 


이우환 <조응 Correspondence> 1994


2. 이우환과 모노하 


큰 캔버스에 휑그렁한 점이 찍혀있다. 

단순함. 여백. 깊은 호흡. 명상.


이우환의 작품은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물들과의 대등한 관계를 맺는 단순한 개념에서 시작된다.

모노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예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사물이 더 이상 단순한 물질로서가 아니라 가공하거나 조작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의 사물로부터 미술의 언어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를 했다.

이들의 제작 원칙은 만남을 추구하여 자연 물질과 물리적 현상을 소재로 하고, 존재와 상호연관의 상황 파악을 추구하여 제작자가 아닌 관람자나 명상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기에 정작 중요한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존재의 개방이나 노출이 된다.


“무지의 캔버스에 하나의 점을 찍는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리는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관계 짓게 하는 짓이다. 터치와 논 터치의 겨룸과 상호침투의 간섭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여백현상이야말로 회화를 열린 것이 되게 해 준다.”

이우환 <여백의 예술>


모노란 물체라는 뜻으로 이우환의 작품에서는 모노와 모노와의 관계 즉 만남이 중요하다.

이우환은 '만남의 미학'에서 회색은 검은색 옆에 있으면 희게 보이고, 흰색 옆에 있으면 한없이 어둡게 보이는 회색의 입장과 상황에 관해 간결하게 적었다.


작가는 젯소와 흰색 물감을 4~5번 칠한 두꺼운 캔버스 위에 돌을 갈아 물감과 미듐을 섞어 만든 석채로 넓은 붓으로 칠한다.


"막상 캔버스 앞에 서면 그날의 날씨와 공기, 나의 생리와 기분, 붓과 물과 기름, 물감... 이런 상태와 관계가 모두 늘 똑같지 않다. 내가 드로잉 해놓은 대로 이 쪽 몇 센티 저 쪽 몇 센티 정해서 그날 콤포지션에서 그리자고 하는데 막상 그리려고 하면 마음이 달라진다. 좀 더 비켜나야 게는 거다. 그리고 한꺼번에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수없이 칠한 거다. 그날 몇 번이고 칠하고, 일주일 내지 열흘 말려서 또 칠하고 그걸 3~4번 반복하면 그림 하나 완성하는데 40일 정도 걸린다. 처음에는 이것보다 작다가 점점 커진다. 그릴 때마다 조금씩 어떤 차별성이랄까 어긋남이 나오는 거다. 그런 어긋남의 느낌이 없으면 그리는 재미가 없어진다. 생각대로 그리는 게 아니다. 생각한 그대로면 재미가 하나도 없다. 생각이 꼬투리가 돼서, 생각이 어떤 뭔가를 물고 오는 부분이 돼서 다른 게 거기 첨가된다거나 빠진다거나 해야 그림이 재미가 있지 "

이우환, 2012년 9월 W 코리아 인터뷰 중



내가 나를 응시하는 것은 폭주하는 기관차가 플랫폼에 멈췄다는 것.

마음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다.

"조금 천천히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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