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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울라 최 Sep 29. 2021

창고형 대형 마트 - 사진, 예술이 되다.

안드레아 구어스키와 베허 학파

 



창고형 대형 마트


9:30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나만의 시간이 남는다.

어느 날은 친동생과 함께 창고형 대형 마트를 갔다. 필요한 것만 카트에 담아 나오는 나와 다르게 세심하게 분석하며 쇼핑을 하는 동생과 함께 장 보는 건 나에게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상품이 차곡차곡 깔끔하게 진열돼있는 마트 안 풍경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다. 찾고 싶은 상품을 찾기 위해 많은 걸음을 투자해야 한다.

나는 창고형 대형 마트에서 딱히 소비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는 이유는 가득가득 메어진 상품들을 보며 심적 포만감, 반듯하게 잘 정돈된 진열을 보며 대리만족 그리고 소비하는 군중들을 보며 사회의 소속감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 핸드폰 사진 - 20210819



 

Andreas Gursky


우리가 한 건물이나 한 장소에 살고 있다고 이해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우주 속에서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는 한 행성에 살고 있음을 인지하게 만들고 싶다.

Andreas Gursky(1955~ )는 독일의 사진작가이다.

내가 왜 마트에 가서 이 사진이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나의 20대를 매료시켰던 독일 미술과 이미지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고자 한다.

안드레아 구어스키 Andreas Gursky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베허 학파(Die Becher Klasse)의 학생이었다. 독일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접했을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 Candida Hoefer, 토마스 슈트러트 Thomas Struth, 토마스 루프 Thomas Ruff  등 모두 베허 학파 1세대 작가이다. 여기서 베허 학파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독일에 부부 사진가 베른트 베허와 힐러 베허 Bernd and Hilla Becher가 1976~1998 교수로 역임해 있던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의 클래스이다.


99 cent, 1999 Cibachrome print  81 1/2 × 132 5/8 in  207 × 336.9 cm  Edition of 6

필자는 2008년 뒤셀도르프에서 안드레아 구어스키의 대형 사진을 전시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사이즈가 굉장히 크고 일상적인 사진이었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이게 짜인 구도와 현실적인 이미지였다. 얼핏 보면 재미없을 법한 이미지에 나는 왜 매료되었을까?

내 생각에 사진 작품이라 하면 에로틱한 장면, 아름다운 꽃과 풍경 그리고 우연히 발견된 자연의 순간, 유명한 인물 등 자극적인 시각과 연출된 감동을 소재로 하는 것이었다.

당시 처음 보는 그의 다큐멘터리적이고 차가운 작품 앞에서 나는 새로운 경험 했다.




차가운 유형학 사진


유형학이란 무엇일까?

'유형학'이란 존재하는 대상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 어떻게 카테고리화 하는지에 따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는 분류학적 기법을 말한다.


사진의 기계적 본질은 객관성, 사실성, 묘사성이다. 이러한 본질이 가장 적합한 곳은 범죄 관련과 도감 관련이었다. 오로지 객관적이어야 하고, 사실적이어야 하고, 묘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형학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 맹위를 떨친다 유형이란 짝짓기와 같다. 같은 것끼리 짝을 지어 나타나는 꼴 type이다. 그래서 유형학의 사진은 같은 모양, 같은 형태, 같은 꼴들이 열 지어 선 모습이다. 학교 앨범을 생각하거나 현상범 벽보판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유형적 사진과 도감 사진은 구분된다.

......

유형학은 무엇보다 재현의 유사성이다. 유사 재현을 반복한 모습이 유형학이다. 때문에 재현에 따른 유사는 필연적으로 표면에서 차이라는 대립이 발생한다. 차이는 필연적이다. 레비-스트로스도 그래서 "서로 유사한 것은 유사성들이 아니라 오히려 차이들이다."라고 했고, 들뢰즈도 [차이와 반복]에서 "재현에 의한 유사 및 차이는 형상적인 문제, 기호적인 문제이지 존재론적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

그렇다면 이제 유형학적 사진에 대해서 말해보자. 현대사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사진이 독일발 유형학적 사진이다....... 객관적 사실성을 강조한 범죄 사진(머그샷)이 일단 이에 속한다고 알아두자. 그렇다면 이렇게 무미건조한 사진이 어떤 까닭으로 그리 대단한 사진으로 자리 잡았느냐 물어보면 밤새 말해도 끝이 없다. 일단 이쯤에서 지난 20년간 가장 잘 나간 사진의 모습, 그게 유형학적 사진이고 가장 비싼 사진들도 또한 유형학적 사진이고, 한국 작가들이 가장 많이 흉내 내고, 또 전 세계적으로도 사진가들이 가장 많이 흉내 냈던 사진이 유형학적 사진이었다는 것만 알아두자. 물로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고 독일 작가들이다. 독일 작가들은 대부분 유형학적 사진을 한다고 보면 된다. 대표적인 작가로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토마스 디만트, 칸디다 회퍼, 악셀 휘태 등이다.  <사진 기호학(표현에서 해석까지)> -진동선-


베허 부부 Bernd und Hilla Becher: Fachwerkhäuser, 1959-61 / 1974



사진은 어떻게 그림이 됐는가?


일반적으로 대중은 회화 작품이라 하면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라 한다.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 원근법이 적용된 후로 회화는 사실적이고 조화롭게 재현되었다. 독일 현대미술 작가 게르하트 리히터 Gerhard Richter는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의 이미지로 합성해 회화 painting로 리얼하게 재현했다.

"SEASCAPE (CLOUDY)", 1969


Fotografien werden Bilder (PHOTOGRAPHS BECOME PICTURES)

사진은 어떻게 그림이 됐는가?

앞서 이야기했던 베허 부부는 1960년대 독일 서부의 지겐 Siegen지역에서 독일식 공업 건물 시리즈를 촬영하였다. 사진은 회화에 비하여 복수 제작이나 복제가 수월하기 때문에  위에 보이는 여러 장의 골조식 주택 사진처럼  '유형학'이라는 새로운 사진 양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201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에서 <베허 학파-사진은 어떻게 그림이 됐는가? Fotografien werden Bilder> 전 Volker Döhne, Andreas Gursky, Candida Höfer, Axel Hütte, Tata Ronkholz, Thomas Ruff, Jörg Sasse, Thomas Struth und Petra Wunderlich의 작품을 선보였다.


https://www.staedelmuseum.de/en/exhibitions/photographs-become-pictures

예술= 시대 + 기술 이다.

 

사진으로서의 예술, 즉 예술작품들을 사진으로 복제하는 작업이 예술의 기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물음에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사진은 복제기술로서 어떤 그림, 조각 또는 건물을 현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각하게 해 주고, 더 쉽게 파악하게 해 준다. 기계적 복제는 무엇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작품을 지배하는 일을 용이하게 해주는 축소 기술이다. 벤야민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사진의 본질은 우선 기술이다...... 기술은 육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며, 또 그를 통해 세계의 대한 우리의 이미지와 관념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변하게 된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일상적인 예술


수전손택은 <아름다움에 대하여>에서 “…… 예술 작품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죽었다는 뜻이라고 Gertude Stein은 말한다. 아름다움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가장 재미없고 천박한 칭찬이다…….”라고 말했다. 보통 아름답다는 말은 남성적인 형용사가 아닌듯하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20세기 고전적 미술작품인 뒤샹 <샘>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소변기를 전시장으로 옮긴 작품이다. 우리가 예술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데 아름다움, 고귀한 것에 환상을 갖고 현실을 오해하게 된다. 뒤샹 이후 현대미술은 미술과 일상의 차이를 좁히려고 하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이 현대미술관에서 난해한 경험을 하거나 흥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오는 이유는 오르세 미술관이나 우피치 미술관에서 볼 법한 묘사와 장식에 치우친 미술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온전히 예술을 경험해야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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