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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울라 최 Oct 02. 2021

비를 맞는 기쁨  - 낭만주의

히틀러가 사랑한 화가 C.D프리드리히 & 함부르크에서 만난 W터너

비를 맞는 기쁨


비 오는 날 아이와 산책을 한다.

장화와 우산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마 비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이 고인 웅덩이를 발견하면 아이는 즉시 달려가 고인 물속을 첨벙첨벙 달린다.

'그래 아이가 즐거워하면 됐어.'

하지만 금세 젖어버린 바지와 양말을 보면 현실 엄마가 된다.

"이제 그만."

아이의 기쁨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아이를 재빨리 안아 차에 태웠다.


오늘 샤워를 했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예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루에 한 번 샤워는 꼭 해야 해! 안 좋은 기운들을 날려버릴 수 있거든"

미신을 잘 믿는 친구라 그냥 가볍게 듣고 넘겼다.

약속도 없고 아무 일 없는 내가 대낮에 안 좋은 기운을 날려버리기 위해 샤워를 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마음이 해소가 됐다.

<미드나잇 인 파리> 주인공은 낭만주의자이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어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는 내내 예술과 낭만으로 가득한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낭만이 있는 스토리가 내 인생에 있다.


혼자 길을 걷는 것.

창문 밖을 내다보는 것.

예술가를 동경하는 것.

상상하는 것.

꿈꾸는 것.


어릴 적 잠들기 전 이불을 머리까지 덮는 습관이 있었다. 상상하는 시간이다.

이불속에서 상상하는 시간과 공간은 왠지 비밀스러웠다. 일종에 경계 없는 자유시간 같았다.



낭만주의 Romanticism

: 꿈이나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감상적인 태도를 중시하는 창작 태도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절대적인 이성이 중시되었던 고전주의와 다르게 작가의 감정(Gefühl)을 담은 작품이 낭만주의 미술의 특징이다. 혁명의 시대 18C후반에서 19C초 사회적인 불안감이 고조된 시기 이상적인 세계에 사람들이 몰입하기 시작한다. 낭만주의는 비합리적인 것, 주관적인 것, 영적인 것을 높이 평가했다.


괴테와 질풍노도 운동 Sturm und Drang 


독일 문학의 전성기 '질풍노도 운동'은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특징으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나타난 문학사조이다. 이 문예 부흥 운동 가운데에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와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가 있었다.


부유한 부모에게 보호를 보호를 받았던 괴테는 다른 질풍노도 운동가들과 매우 달랐다. 그의 부모는 부드럽고 열정적으로 소년의 경쾌한 지성과 생동감 넘치는 환상을 길러 주었다. 그의 초기 양육은 경건주의이 본거지였던 도시 덕분에 물론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들의 세계관에 따라 지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친척과 친구들은 프랑크푸르트라고 하는 자랑스러운 제국주의적 도시에서 자산가이며 권위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소 현학적인 그의 부모들은 이 전도유망한 소년이 뛰어난 교율을 받도록 주선하고 스스로 그것들을 챙겼다. 말하자면 그의 어머니는 사교적이고 실제적인 여성이었는데, 스토리텔링과 유머의 재능은 그녀가 아이들과 그 친구들에게 즐거운 친구가 되도록 들어주었다. 괴테는 다소 섬세한 아이였으며, 가정환경과 누이들의 교제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상상력은 7년 전쟁 동안 프랑스 점령군의 극장에 의해, 그의 아버지의 집을 장식한 예술가들에 의해 자양분을 제공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스토리텔링, 소극의 재능을 보였으며 사실인 것처럼 상상하기에서 기쁨을 느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시대의 현대풍 문학이 그의 시에서 분명해졌다. 그가 1765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갔을 때, 그는 이 '작은 파리'의 로코코 방식을 프랑스화하는 데서 사회적, 문학적 추구의 기쁨에 열중했고, 들떠 있는 소녀와 사랑에 빠졌고, 아마추어 화가로서 그림을 그렸으며, 유행을 따르는 멋쟁이처럼 옷을 차려입고 처신했다. 그래서인지 한 친구는 심지어 그를 '뽐내는 맵시꾼'이라고 불렀다. 그의 자기 확신은 이미 뚜렷이 드러났으며, 일생 동안 내내 그와 함께 남아 있었다. 또 그는 하만과 헤르더, 렌츠의 특징이었던 고뇌 어린 자기 회의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았다.

<독일의 질풍노도 - 로이 파스칼>


히틀러가 사랑한 화가 C.D 프리드리히(1774 ~ 1840)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유년시절 화가의 꿈을 갖고 오스트리아 빈 예술대학에 지원하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정권을 잡은 그는 히틀러는 고전주의 예술을 탄압했고 급기야 뮌헨에서 '퇴폐 미술전'(Entartete Kunst)을 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DPQW5aP9Rc

1937년 뮌헨 퇴폐 미술전

 히틀러가 가장 사랑했던 예술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는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이다. 그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한 동안 나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었다. 이 그림과 관련된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직관적으로 이 작품에 꽂힌 나는 가끔 독재자와 같은 면모가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런 우연이......

안개가 뿌옇고 칼바람이 불고 있는 차가운 풍경. 정중앙에 지팡이를 잡은 남자가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구도는 평면적인 회화에 공간감을 주는 효과로 찰떡이다.

그 남자의 표정은 어떨까?

영화에서 마법사나 권력자들이 갖고 다니는 지팡이는 권력을 가진 자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욕망의 끝이 없는 인간이 광활한 자연 앞에서는 너무 작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 1818 -  Oil - 94.8 cm × 74.8 cm - Kunsthalle Hamburg

Caspar David Friedrich 작가에 관한 정보는 아래 소더비 사이트를 링크해 두었다.

https://www.sothebys.com/en/articles/21-facts-about-caspar-david-friedrich



함부르크에서 만난 J.M.W 터너(1775-1851)


독일에서 생활하던 중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나는 기차를 타고 혼자 여행을 했다.

함부르크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 우아함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함부르크 중심가에 위치한 Bucerius Kunst Forum에서 윌리엄 터너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는 윌리엄 터너라 하면 웅장한 풍경화, 휘갈긴 붓질, 클래식, 지루하고 재미없는 그림이었다. 그래도 터너는 대가이니까 전시는 봐야지. 기대 없이 전시를 관람했다.


2011.6.2. ~ 9.11 전시된 윌리엄 터너 전시 링크

https://www.buceriuskunstforum.de/ausstellungen/william-turner-maler-der-elemente

독일에서 전시를 본 후 나의 '최애 작가 리스트'에 꼽힌 두 명 회화작가가 있는데. 뭉크와 터너다.

터너의 전시는 흙 , 물, 공기 그리고 불 등을 주제로 섹션을 나누어 진행되었다. 자연의 형태를 포착하여 연구하고 색, 대기, 빛을 강조한 낭만주의적 그림을 그렸다. 터너의 작품은 실제로 강렬한 붓터치와 역동적인 장면으로 태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형태가 없는 것을 포착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Farne Island-Shipwereck -  Engraving -  30.48cm × 35.56 cm - Collection Albright-Knox Art Gallery
Snow Storm - 1842 - Oil - 91 cm × 122 cm - Tate Britain, London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작가에 관한 정보는 네이버 검색 사이트를 링크해 두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43502&cid=63854&categoryId=63854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낭만주의는 주관적이다. 칸트는 우리는 항상 우리의 눈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화적으로 형성된 관점에 따라 본다는 의미다.

자연을 사랑한 장 자크 루소는 소박한 삶을 강조하며 문명을 부정했다. 그는 자연 안에서 지낼 때 더 진실한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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