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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May 16. 2023

"편집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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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그때 나는 엉뚱하게도 편집증(:paranoia)이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상에게 적의가 숨어 있다고 판단하여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증상.


그리스어원으로 para는 '~넘어' 또는 '~반대'를 의미하고 nous는 '정신'을 의미한다고 하니까 사실 paranoia는 정신 넘어.. 그러니까 정신이 나간 상태를 가리키는 게 된다. 타자에 대한 어떤 믿음도 상실한 상태가 곧 한 사람이 미치게 되는 순간이라는 슬픈 역사가 이 단어 속에 아무렇지 않게 새겨져 있다. 인간이 마주해야할 삶의 진실들은 늘 이런 방식으로 은폐되어 왔으니까.


그런데 패러노이어를 편집증이라고 번역한 것이 더 흥미롭다. 어떤 ‘실재’가 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편집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간주한다는 것.


그렇다면 반드시 어떤 주체의 의지와 판단에 입각한 '편집'행위로 탄생하고 완성되는 미디어는, 필히 어떤 ‘병적인’ 징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것이 생산 주체의 의식적 목적으로 단지 수렴한다면 말이다.


흔히 사진, 영상 또는 글을 ‘편집’한다고들 한다. 이는 모두 어떤 개인 또는 집단의 아이디어와 기획이 담긴 분명한 목적성을 띄는 창작물이다. 이미지 또는 텍스트를 어떻게 배치하고 조립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 전혀 다른 상상력이 탄생한다.


그런데 바로 이 것이 ‘실재’라고 간편하게 주장하는 이미지, 고정된 ‘진실’이 바로 이것이므로 어서 믿어버리라 강요하는 이미지는 가히 ‘편집증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편집’의 결과물로 탄생하는 또 다른 매체, ‘책’이라는 미디어는 이러한 ‘편집증적 징후’로부터 훨씬 더 안전하다. 이미지 재현가들의 책무가 시각 매체의 폭력성을 경계하는 것에 있다면, 텍스트 편집자가 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이미 이 윤리를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책 속의 텍스트는 어떤 경우에도 ‘닫혀’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그 책이 얼마만큼의 텍스트 너머의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는가를 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은 하나의 우주여야 한다. 언제 새로운 별이 발견될지 모르고, 언제 어디까지 팽창할지 모르나, 시공간의 세계를 넘어 언제나 뻗어나가고 있는.

그리고 그 텍스트를 편집하는 일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발생할 빅뱅의 씨앗을 여기저기 뿌려놓는 일이다. 독자가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은밀하고 견고하게. 언젠가 그의 안에서 발생하고야 말 우주라는 사건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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