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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라니 Nov 16. 2023

정여울 마흔에 관하여 서평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

 혹독한 서른아홉을 겪었다. 관계도 건강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바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였다. 마흔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자 울창한 여름 같은 이삼십 대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늘 '남들 같은' 사회경험, 연애, 여행 한번 누리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다. 환상에 가까운 목표와 멀어진 삶에서,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내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갈팡질팡할 때 이 책을 만났다.

 '새로움의 시간'을 읽으며 관성에 젖어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다 느낄 때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지난날의 실수에 초점을 맞춰 아쉬워하기만 했기에. 그녀는 '삶은 한 번뿐이지만,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매일매일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마흔에 도달할 때 황금 같은 이삼십 대를 버티기만 한 것이 가장 크게 아쉬웠다. 오랜 기간 수험생활을 하며 만성화된 무기력에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너무 커지니 웅크리기만 했다. 누군가의 비난이 따가워도 숨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조차 몰랐다. 마흔 즈음이 되어서야 조금씩 타당한 이유와 방법을 나만의 속도로 익히고 있다.

 넘쳐나는 SNS 글들과 누군가의 이야기에 속 끓이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내며 행복 찾기를 시작했다. 작가의 '내가 못 가진 것들만 목마른 눈빛으로 우러러 바라보던 한평생을 뉘우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더욱더 마음이 동했다. '씨앗은 동일하지만, 그 나무의 품새와 열매의 향기는 저마다 다른 그런 나무, 행복은 당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당신으로부터 매일매일 빚어지는 것. 당신이라는 단 하나의 뿌리로부터 자라나는 나무다.'라는 그녀의 말이 크게 울린다.

 

'나다울 시간'은 타인의 평가와 인정을 받는 것이 타당한 방향이라 믿으며 살아온 나에게 'Love yourself'를 어떻게 실현하며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게 해 준다. '당신은 먼 훗날 대단해질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바로 당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폭풍우에 맞설 수 있다.'라고 격려를 보내준다.

 'Love yourself' 나를 사랑하는 법은 내가 무언가를 이룰 때, 혹은 그 과정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깨닫고 있는 것은 시험에 실패했더라도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한 방패막으로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랑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이 최악일지라도 또다시 내일의 나에게 걸맞은 최선을 선택하고 열정을 쏟을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또 오늘이라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거절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혹여 상대를 잃을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거절을 삼키기 일쑤이다. '거절여부의 결정 과정 속에서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되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마흔의 징표였다.'며, 거절의 해방감을 느낀 '내가 나일 때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그렇게 거절을 하지 못해 쩔쩔매던 순간들의 스트레스로부터 훨씬 일찍 해방되지 않았을까'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도 조금 더 자기 결정을 누리기 위해 용기 낼 마음을 키우려 한다.

  거절을 당하는 입장은 불쾌할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으로 "no"라고 말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한다. 그럴 때 큰 감흥을 받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당신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제안한 라떼를 거절한 것이라고" 거절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나(혹은 당신)에 대한 거절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계속 말한다.


 마흔은 '나 자신의 결핍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 태생적인 결핍과 고쳐지지 않는 단점과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콤플렉스가 있다.'는 말에 나 홀로 짊어지고 가는 짐의 무거움에 인상을 찌푸렸던 내가, 옆에서 자신들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타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거웠던 고독감이 사그라들었다. 그때서야 내가 든 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마흔이 그렇게 나 자신의 모든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완전한 수용(total acceptation)의 전환점"이 아닐까.


 20대에 꿈꿨던 모습이 아니고 여전히 완숙미를 갖추지 못한 마흔을 맞이했지만, 실패했다고 나를 미워했던 마음들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이 조금 더 성장해서 아름다운 나이 듦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진정 원했던 것들을 배우고 온전한 내 것을 만드는 사십 대를 위한 선물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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