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의 p 엄마의 든든한 서포터스
1. 시아버지의 뇌출혈
12월 21일 신랑이 갑자기 자는 나를 깨웠다. 서울에서 경남에 있는 시댁으로 혼자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영문도 모른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응? 지금? 왜?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다.
신랑은 트레이닝복 정도를 챙겨서 서둘러 운전을 하러 집 밖을 나섰다. 유난히 밤이 어두웠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 내게도 생겼다. 멍한 표정의 나와 달리, 그는 얼마나 마음이 다급하고 초조했을까.
시댁을 내려가는 길에 뇌출혈 수술을 잘하는 병원을 알아보라고 한다.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검색창에 검색을 해보고, 뇌출혈 카페에 가입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골든타임이 4시간이라는 것도 그때야 알았다.
신랑에게 서울의 좋은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골든타임 안에 수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무사하시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얼마 전에 출산을 한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뇌출혈로 어느 병원이 좋은지.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알아두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마음이 착잡했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옆에서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것도 나의 무능력 탓인 것 같았다.
수술을 했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신랑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LLC 원장님께 이번에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원장님은 쾌차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시며, 이번에는 못 오는 걸로 알고 있겠다고 하셨다. 계약금으로 미리 보낸 약간의 돈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송금해 주시겠다는 호의를 보내주셨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얼굴 한번 보지 않고, 몇 번의 카톡을 주고받은 것만으로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다음에 어학연수를 간다면, 꼭 LLC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시아버지가 편찮으실 줄 모르고 한 비행기의 얼리체크인으로 항공비는 받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더 천천히 체크인을 할걸.
아이들과 어학연수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구나 생각하며 신랑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렸다.
중환자실에서 면회가 되지 않아 시어머니도 병원에 못 가신다. 신랑은 회사일로 집으로 돌아왔고, 내가 있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며, 어학연수비를 건네주었다.
그는 우리를 어학연수 보내겠다고 결심하며 집에 돌아와 돈을 쥐어주었지만, 나는 냉큼 받기 어려웠다. 생각이 여러 가지로 많아졌다.
어쨌든 크리스마스 당일에 우리는 다시 어학연수를 가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원장님께는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연락을 드렸다. 원장님은 다시 흔쾌히 우리를 받을 준비를 하시겠다고 대답해 주셨다. 연말의 우리는 그렇게 큰 일을 포기했다 다시 결심하며, 먼 여정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어학연수를 가기 직전, 연말에 시댁에 갔다. 여전히 시아버지는 면회불가였지만, 아침마다 눈물을 흘리시는 시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평소보다 더 드시지 못했고, 불안한 마음을 다른 곳에 신경 쓰시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평생 고생만 하다 이제 살만해졌는데 저렇게 되었다고 가슴 아파하셨다. 어학연수 가지 말걸 그랬다고 말씀드리니, “가야지. 애들 공부하러 가야지.”하신다. 내 마음을 덜 불편하게 해주고 싶으셨는지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