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끝내고 대학원서를 쓰는 날이었다. 딱히 염두에 둔 곳이 없었다. 그냥 남들 대학교 가니까 가야지 하는 생각했을 뿐, 특정 학과를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 물음에 짝꿍 녀석은
"호텔경영학과 지원할 거다. 그기 가면 시계도 주고, 양복도 준다더라"
친구의 혹 하는 말에 내가 지원한 학과는 친구 따라 호텔경영학과가 되었다. 주변 친구들은 아직도 그 일로 놀려된다. 아무 생각 없이 지원한 호텔경영학과에 덜컥 합격해 대학을 다니다,1학년을 마치면서 방학과 동시에 영장이 날아왔다.
입대를 6개월가량 남겨두고 알바라도 할 요량으로 일자리를 찾던 중 카페 구인 공고를 보고 별 생각 지원했는데 또 덜컥 붙었다. 그렇게 커피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나는 20살까지 아메리카노를 단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다.
나에게 카페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었다. 어릴 적 뉴스에서 스타벅스 이야기를 하며 가격이 비싸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사람들은 한 잔에 몇 천 원씩 하는 커피를 마시는 이들을 된장녀, 된장남이라 비하하곤 했다.
그런 인식이 박혀있다 보니 20살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카페라는 곳을 가봤다. 한 번은 친구들을 따라간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키고는 이게 다냐고 물은 적도 있다. 하물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그날까지도 캐러멜 마끼아또가 무엇인지, 카페모카가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그 당시 나에게는 당연하게도 최고의 커피이자 유일하게 마시던 커피는 믹스커피였기 때문이다. 역시 커피는 믹스커피지. 아무튼 그런 놈이 카페에서 일하겠다고 왔으니 그 당시 먼저 일하고 있던 알바 누나는 기가 찰 노릇이었으랴. 누나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미안해요.
카페에서 일하게 된 그날 부로 서점에 달려가 몇 권의 커피 서적을 사다가 하루를 꼬박 걸려 봤다. 그렇게 커피를 책으로 먼저 배웠다. 책을 보면 볼수록 커피에 빠져들었다. 처음으로 무엇에 열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커피는 나에게 더 이상 단순히 검은 물이 아니었다. 또 내가 만든 커피를 손님에게 돈을 받고 판매까지 하니 어린 마음에 " 내가 만든 걸 돈 내고 먹는다고? "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때까진 몰랐다. 지금까지 커피를 하고 있을 줄은.
P.S 나에게 호텔경영학과를 가자고 했던 친구는 간호학과를 지원해 지금은 간호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