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한다는 허세와 자아도취에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말이 커피 일을 한다였지, 커피에 대한 제대로 된 일말의 지식조차 없을 때였다. 당시 일하고 있던 카페에 원두를 납품을 해주시던 로스팅 회사의 사장님이 방문하신 적이 있다. 그때 함께 오신 분이 바로 큐-그레이더(Q-Grader)였다. 당시만 해도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 분은 국내 100여 명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그때의 기억이 맞다면 미국 SCAA 협회에 직접 가야 얻을 수 있는 자격증이었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큐 그레이더라는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자아도취에 빠졌지만 커피에 많이 무지했다. 내 위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자, 어디에서나 볼법한 얼간이었다.
[ 큐-그레이더(Q-Grader)는 생두의 품질을 평가하고 커피 맛, 향 등을 감별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1호큐그레이더는 리브레 커피의 서필훈 대표님으로 알려져 있다. ]
그분이 다시 커피 세팅값을 잡고커피를 한 잔 내어주시는데
'이럴 수가! 같은 원두로 내렸는데... 이게 내가 알던 커피라고? 내가 지금까지 내린 커피는 뭐지?'
내게 커피는 그저 쓰고 검은 물. 잠을 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지, 커피에서 그런 맛이 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얼간이에게 한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내가 돈을 받고 내어드린 커피가 너무 죄송스럽게 여겨졌다.
그렇게 생애 처음 진짜 바리스타를 만나 커피가 무엇인지 짧게 배웠다. 아쉽게도 다른 스케줄로 인해 가셔야 했기에 길게 배우지는 못했지만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이었다.
그분을 만난 뒤로는 커피에 관련해서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