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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와하나 Nov 30. 2022

치킨 헤는 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이주일에 한번 막내 삼촌네 집에 방문했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계셨거든요. 삼촌 댁에 방문하게 되면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사촌 형과 사촌 동생 그리고 저는 집 뒤 골목 어귀에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위치한 치킨집까지 뛰어가 바삭하게 튀긴 후라이드와 은박지에 쌓인 달콤한 양념 치킨을 한 마리씩 포장해 오곤 했습니다.


치킨은 할머니의 소울 푸드였거든요. 다른 음식은 잘 못 드시는데 치킨은 이상하리만큼 잘 드셨습니다. 그렇게 매주 주말은 우리에게 치킨을 먹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무렵까지 매주 모여 치킨을 먹었습니다. 그 정도 먹었으면 물릴 법도 한데, 이게 습관이 되어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매주 먹었습니다. 생일날에도 케이크 대신 치킨을, 졸업식 날에도 짜장면 대신 치킨을 먹었고요, 그리고 30살이 넘은 지금도 매주 최소 한 마리씩은 먹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 이제는 돈까지 벌고 있으니 더 자주 먹게 되었습니다. )




군대에서 취사병이었던 저는 450여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의 밥을 담당했습니다. 식사를 준비할 때 제일 싫었던 메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치킨이었는데요, 준비과정부터 요리를 하고 마무리하는데 까지 다른 반찬들에 비해 상당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까다로웠기 때문이죠. 또한 동원 예비부대 (예비군)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동원 훈련이 있는 날에는 많게는 1500여 명 이상이 먹을 치킨을 튀기곤 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바깥 온도가 30 넘어가는 여름 날씨에 치킨을 튀기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무더운 날씨, 에어컨도 없는 취사장에서 기름 온도 180가 넘어가는 대형 가마솥 앞에 서서 치킨을 튀기고 있노라면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가는 듯했죠. 게다가 땀이 몸을 타고 내려가 장화를 벗으면 고여있던 땀들이 쭈륵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또 닭을 튀기고 나면 온몸에 튀김 냄새가 배어 샤워를 해도 냄새가 가시질 않았죠.


여러분이라면 보기만 해도 싫을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저는 정말 맛있게 먹었답니다.

요리하는 게 싫었을 뿐, 치킨은 죄가 없으니까요. : )






  이처럼 제게 치킨 하면 많은 기억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치킨 한 마리에 가족에 대한 추억과


치킨 한 마리에 힘들었던 취사병 생활과


치킨 한 마리에 친구들과의 우정도,


치킨 한 마리에 기념일들이 기억나곤 합니다.


여러분은 치킨 하면 어떤 추억이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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