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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와하나 Dec 14. 2023

아버지의 월급봉투

  요즘 세대의 젊은 사람들은 아마 '월급봉투'를 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저도 월급봉투를 본지가 꽤 오래됐거든요. 지금처럼 인터넷 뱅킹이 활성화된 시대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는 월급봉투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많은 곳에서 사용하곤 했습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대부분의 회사들이 은행 계좌를 통해 지급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죠.


급여 봉투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20대 시절 딱 한번 월급을 봉투에 담아 받아 본 적이 있는데요, 통장에 바로 찍히는 월급과 달리 봉투에 받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가노라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월급 봉투와 관련된 저의 아버지 이야기인데요, 매일 소주 한 병은 꼭 드셔야 직성이 풀리셨던 아버지는 한 가지 고민이 있으셨답니다. 바로 월급날에 어떻게 해야 월급봉투를 잃어버리지 않고 술을 맘 편히 먹을 수 있을까였죠. 지금이야 ATM 기계가 흔한 시절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길에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지금처럼 체크카드나 입출금 통장 카드도 흔히 사용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요.


  고민 끝에 아버지는 월급날이 되면 박스 테이프를 준비하셨어요. 한쪽 바지를 걷어 올려 월급봉투를 종아리에 가져다 대고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쌌습니다. 그러고 걷어 올린 바지를 다시 내리면 겉으로 보기엔 보이지 않는 완벽한 위장이 되었던 거죠. 그렇게 맘 편히 술을 진탕 마시고는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월급날 아버지가 늦게 돌아오시는 날이면 종아리에서 월급봉투를 오려낼 가위를 준비하시곤 했죠. 다행히 단 한 번도 월급을 잃어버리지 않고 집으로 무사히 귀환하셨기에 어머니에게 큰 잔소리는 듣지 않으셨죠. 종아리에서 월급을 오려내시며 어머니가 하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 느그 아버지는 술만 안 마시면 참 좋은데, 술이 웬수다, 웬수. 어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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