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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기빵맨 May 07. 2024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취이이익! 화력 좋은 대형 회전솥에 숭덩숭덩 썰어낸 돼지고기를 볶다 검붉은 색의 짭조름한 간장을 부으니 지글지글 간장이 타오르는 모양이다. 새하얀 설탕을 봉지 째 들어 적당량 부어준 뒤 스테인리스 삽으로 뒤적여 준다, 오른쪽, 왼쪽 삽의 손잡이를 번갈아 가며 바꿔 잡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쪽만 사용하다 보면 가슴 근육이 짝짝이가 되기 때문이다. 고기의 양이 제법 되다 보니 고기를 뒤적일 때마다 팔 근육은 물론, 가슴 근육을 사용해야 좀 더 편하게 저을 수 있는 걸 터득한 나였기 때문이다. 조리가 끝나면 마치 전신 운동을 끝낸 느낌이랄까. 고기에 간장과 설탕을 버무려 볶아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겠지만, 땅의 따스한 온기를 받아 무럭무럭 자라난 양파와 푸릇한 파를 비롯해 형형색색을 띄는 각종 야채들을 넣고 마저 볶아 내면 이내 한층 먹음직스러워진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그럴싸한 요리가 되겠지만 화룡점정으로 고소한 참기름을 살짝 둘러 준 뒤, 참깨를 뿌려내 마무리하고는 바트 통에 나누어 담아낸다. 이렇게 하루 세 번 약 450여 명의 병사들이 먹을 요리가 끝나면 나의 하루 임무도 끝이 난다.          




  군 입대 입영소로 가는 기차 안에서 제발, 취사병만 아니기를 바란다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요리 하는 것에 흥미도,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뿐이었으니, 설마 내가 그 많고 많은 직책 중에 취사병이 걸릴까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쩌다 취사병이 되어버린 걸까. 자대 배치 후 유추해 본 생각이 건데, 아마도 대학 학과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었다. 취사반 동기들은 모두 호텔 조리학과였는데, 나 혼자 호텔 경영학과였다. 학과 이름에 호텔 두 글자가 들어간 것, 이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입대 후 처음으로 삽자루를 쥐고 요리한 음식은 멸치 볶음이었다. 멸치 볶음이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꽤 난이도가 있다. 더군다나 대형 솥이라면 더더욱. 열기에 달구어진 커다란 솥에 기름을 두른 뒤 은은한 빛이 맴도는 멸치를 빠르게 볶는다. 기름을 너무 두르면 자칫 튀겨지니 적당히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볶았으면 설탕을 넣어 달콤함을 더해주는데,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면서 위험하다. 달궈진 솥과 다량의 설탕이 만나면 열기에 빠르게 타들어가기 때문이다. 옆에서 봐주겠다는 선임은 멸치 볶음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날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면박을 주고서는 삽자루를 빼앗아갔다. 은은한 빛을 내뿜던 멸치는 검게 변해 연기를 내뿜었고, 취사반에는 탄내만 가득했다. 그날 점심, 새까맣게 타버린 멸치 볶음을 바트 통에 담아내었더니, 그날은 대대장이 취사반에 직접 내려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선임은 아마도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그러지 않았을까 한다.          




  보통 군에 들어오는 오징어나 주꾸미는 세 절 되어 납품된다. 해동시킨 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손질되지 않은 채 갑오징어가 납품되어 들어왔다. 그날이 살아생전 처음으로 오징어를 손질해 본 날이었다. 조리를 도와주시는 조리사 어머니를 따라 오징어 머리에 칼집을 넣고 다리를 쭉 잡아당겨 분리를 해준 뒤 내장과 뼈를 분리시켜 준다. 그러고는 다리를 뒤집어 입을 도려 내주는데, 지금까지 오징어는 먹어만 봤지 이 미끄덩한 외계인 같이 생긴 생명체의 내장까지 발라내려니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꾸물 덕 거리다가는 [그 선임]에게 한 소리 들을 테니 해야지. 한쪽 구석, 버리기 위해 따로 플라스틱 통에 모아둔 오징어 내장과 입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자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정신 못 차린 채 오징어 머리에 칼집을 넣다 ‘찍-’ 내장을 터트려 결국 한소리 들어버렸다.




  메뉴 중에 가장 힘들었던 음식은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삼계탕이었다. 취사반 내부의 솥을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들어있는 야외 취사용 가마솥을 꺼내 장작불을 피워 뒷마당에서 끓여야 했다. 그렇게 끓여야 맛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마솥은 장정 여섯 명 붙어야 겨우 들 수 있는 무게였기에 취사병들이 모여 좁은 창고에서 낑낑 거리며 꺼내와야 했다. 그렇게 꺼내온 솥을 정성스레 닦아내고 준비해 둔 뽀얀 생닭을 넣어준다. 솥 아래 장작을 넣어 불까지 피우면 끝이 난다. 이렇게 보면 쉬운 음식으로 끝나겠지만, 이 음식의 준비과정은 꽤나 길다. 450여 명에게 한 마리씩 보급이 되었기에 450여 마리의 생닭을 손질해야 했다. 커다란 대야에 물을 담아 생닭을 넣은 뒤 몸속에 불순물을 씻어내고 일일이 찹쌀과 밤 등을 넣어 준 후 닭의 다리를 꼬아 한쪽에 켜켜이 쌓아둔다. 그렇게 쌓아둔 생닭을 다시 뒷마당에 가져가 솥에 넣어 몇 시간을 끓여 내는 것이다. 장작불에 끓여낸 삼계탕의 국물 색은 일반 삼계탕과 달리 거무스름한 빛을 띠었는데, 그 국물의 맛은 마치 한약 진액을 먹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하고 깊었다. 그 맛은 그간 끓이느라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으리라.




  점심과 저녁 사이 잠깐 쉬는 시간이면, 뒷마당 의자에 걸터앉아 바람을 쐬었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바람을 맞는 것을 좋아했는데, 우거진 산이 뒤에 있어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면서도 따뜻하고, 풀내음이 섞여 불어오곤 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바람에 나뭇잎이 떨리는 소리는 삼시세끼 밥 하느라 고단한 취사병의 마음을 달래주곤 했다.




  군에서 고되게 음식을 해본 뒤로는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다. 체질상 못 먹는 음식을 제외하고는 음식의 간이 맞지 않다거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이 한 그릇의 음식에는 만든이의 수고스러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주어진 대로 감사히 먹는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한 끼에도 누군가의 노고가 담겼으리라.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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