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답사기행-1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한반도의 가장 높은 꼭지점까지 다다르기 위한 경로는 비상식적이었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합리적으로 연길에 도착하기 위한 경로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일산과 파주를 거쳐, 금강산을 지나 청진, 라진구역을 거쳐 연길에 닿는 것이겠지요.
분단이라는 상황은 비행기의 경로를 반대로 틀었습니다. 인천에서 서쪽으로 기수를 향해 요동반도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꺾어 중국대륙을 가로질렀습니다.
비행 중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국은 말 그래도 대륙다웠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이라고는 습자지만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얼음으로 뒤덮힌 드넓은 대륙을 마주하는 순간, 저기 어디께서 항일투사가 말을 거칠게 달려 오는 모습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했습니다.
한시간이면 닿을지도 모를 거리를 두시간이 넘게 비행하여 도착한 곳은 우리가 흔히 연변이라고 부르는 옌벤조선족자치구였습니다.
자치구답게, 한글과 한자가 병행된 안내판과 간판들이 우리를 먼저 맞이했습니다. 중국 같지 않은 중국이었습니다.
처음 마주한 곳은 북한의 남양이 건너다 보이는 두만강 유역이었습니다. 중국의 가장 변방지역이었습니다. 중국의 가장 변방지역이라는 것은, 북한과 마주닿아 있다는 말이겠지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남에서 그것도 남에서도 훨씬 남쪽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북쪽의 이야기란 상상 속의 신화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스개소리처럼 그들은 새빨간 색의 피부와 뿔이달려 있다고 꾸준히 가르침을 받았다면,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입니다.
내 머릿속의 두만강은 뱃사공이 노를 저어 가도 가도 드넓어야 하는 광할한 곳이어야 했습니다. 만주는 굶주리고 헐벗은 우리 민족이 쫓겨나듯 가야했던 개척의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그러한 만주와 두만강 너머 사는 북쪽의 그들 역시, 맹목적인 주체사상의 노예가 되어 불쌍하기 그지 없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생존이 버겁도록 살아가는 이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중국으로 혹은 남으로 내려오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어야 했기에 전기줄을 감은 철조망과 수많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감시장비와 24시간 경계를 서는 군인들이 그 국경을 지키는 것은 당연해야했습니다.
두만강은 마음만 먹으면 운동신경이 제로에 가까운 저로서도 10분만 달음박질 하면 건너갈 얼음강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철조망이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경계를 위한 구색에 불과해 그 너머 가는 것은 그닥 어려워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음 먹으면 두어번 숨참고, 수영해가면 닿을 듯한 저 강너머에는 북의 남양이라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높지 않게 자리잡은 건물들이 강을 따라 나열되어 있고,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공 하나로 쉴 새 없이 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국경의 어느 곳들에는 북에서 건너와 일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추측이 가능했습니다. 아니 일만 하고 있겠습니까? 춘절의 끝을 아직 잡고 흥겹게 춤을 나누는 이들이 저들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 사는 곳 여느 나라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비행기와 차로 가로지르는 만주벌판도 생각 속의 황량함이 아니었습니다. 겨울이었음에도, 온갖 곡식들을 거둬들인 흔적이 가득한 비옥한 땅으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 땅과 함께 잘 살아온 곳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저 넓지 않은 두만강은, 만주벌판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한 강주원 박사는 국경의 의미를 애써 지우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그어놓은 선에 구속되어 그들을 바라보지 말라는 의미였겠죠. 만주는 독립투사와 개장수들의 역사만 가지고 있는 거친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 숨쉬고 온기를 나누는 평범한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였겠지요.
토지의 서희와 길상이 자리를 잡은 곳, 수많은 독립 투사들이 움트리고 있었던 곳, 그리고도 이름 없는 조선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나가던 곳이 만주였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국경이라는 개념의 희박하던 시절, 그들에게 만주는 또 하나의 사람이 사는 터전이었을 것입니다.
간도 협약이라는 제국주의의 요상한 땅따먹기로 지금은 또 하나의 국경 너머, 국경 밖이 되어 버린 땅이지만 말입니다.
북녘 어느 곳, 만주의 어느 곳, 그 곳에서 우리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수많은 어리석은 편협함을 이제는 지워버릴 수 있었습니다. 만주벌판에 불어오는 북풍에 날려버리듯 말입니다.
그 곳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삶들이 수북히 모여 온기를 나누는 땅, 그 이상은 아닐겁니다.
국경이, 사상이, 국가가 아닌, 온전히 사람만을 바라본다면, 그들이 왜 만주로 갔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다음날, 용정으로 향하는 일정을 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만나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