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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Apr 06. 2024

아! 광화문

월대를 갖춘 광화문을 바라보며

      


   여고시절 광화문은 레코드 가게에서 울리는 광화문 연가와 캐럴송이 연상되는 낭만적인 곳이었다.  문의 의미가 아닌 낭만이 넘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지역의 의미였다. 경복궁이 복원 시작전이었기에 역사의식도, 지식도 부족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은 세종문화회관   주변의 광화문로를 광화문으로 인식하고 모든 추억을 광화문에 저장했으나 사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의 문 이름이다.  요즘 월대까지 갖춰진 광화문을 보면 많은 역사의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채 우뚝하게 버티고 있는 광화문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느껴진다. 월대 옆에 서있는  해치는 자리를 잘못 잡고 있기는 하나 바른 정신과 거짓을 허락하지 않는 상징적인 서수이다.  몇 번의 자리 옮김 속에서도 광화문은 제자리에 우뚝 서서 조선을 지켰던 정신으로 서울을,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남산 한옥 마을에 가면 경복궁  중건 때 도편수였던  이승업의 한옥이 있다.  한옥에 들어서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한옥의 거실의 문들이 다 들어 올려져 거실이 개방된 모습이었다. 분합문으로 되어 있어 공간의 확장도 가능하고 기후변화에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문이라든가 창은 모양과 형태에 때라 많은 기능이 있고,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승업  가옥에서 본 다양한 형태의  창과 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부의 상징이연서 권력의 표현 수단도 되는 문의 의미를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곳에서 경복궁의 광화문이 떠올랐다.


   광화문!  경복궁의  첫째 문은 근정문이고, 셋째 문이 광화문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광화문이 경복궁의 첫째 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광화문을  경복궁의  얼굴이면서  경복궁의  대문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왕의 입장에서 봤을 때 처소에서 가까운 곳인 근정문이 첫 번째 문인 것은  확실히 맞다. 그래서 근정문 앞에서 선왕의 사후에 세자의 즉위식도 하고, 한 달에 번 하는  형식도 근정문  앞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나 국민의 입장에서 광화문은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얼굴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도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광화문이 철거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할 정도로 문에는 정신과 혼이 담겨 있다. 이전해서 6.25를 겪으며 부서진 후 옮긴 문도 목재가  아닌  시멘트로 현판도 색깔이 잘못 칠해진 채  옮겨졌다. 광화문은 이제 현판 복원 등 검증을 거치고 월대까지 복원해서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문이 갖는 상징성은 누구라도 인정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문을 거쳐야만 하는 통과제의적인 의미부터 그 문에 들어가야만 하는 허락이 인정되었을 때 그에 따른  권한, 권리 등이 얻어지는 당연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광화문의 의미에서도 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광화문이란  이름이 지어졌는데 임금의 덕이 만방에 비치라는 염원이 담겨있는 문인 것이다. 왕이 사는 궁궐의 문에  어떻게 정치를 하겠다는 자세가 담긴 것이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궁궐로 존재했던 조선의 500여 년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아래에서 감내해야 했던 고난과 굴욕의 역사까지 느껴지지만 이제 광화문은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한국의 랜드마크로 많은 사람들이 경복궁을 찾아오고 있다. 큰 복이 담겨있는 경복궁이 만방의  많은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나눠주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역사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낭만과 사색은 더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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