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과객인데 날이 저물어 하루 신세를 질까 합니다.”
산길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멀리서 빛나는 불빛을 하나 발견한다. 기쁜 마음으로 하루만 묵게 해달라고 주인장을 부르면 허름한 초가집에서 젊은 여인이 나온다. 그녀는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 과객을 묵게 하는 건 곤란하다고 말한다. 남자는 간곡하게 부탁하고 여자는 으스스한 기운을 풍기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가 입은 하얀 소복이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난다.
그때부터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언니, 언니. 구미호 나왔어? 다 지나가면 말해줘, 알았지”
겁이 많았던 나는 아예 이불로 동굴을 만들고 구미호가 나오는 장면이 끝나면 그 속에서 나오려고 했다.
“끝났어, 나와.”
안심하고 이불을 걷어내면 흰머리를 산발한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꺅! 뭐야, 미쳤어! 구미호잖아.”
언니를 베개로 때리며 소리를 꽥꽥 지르면, 엄마가 나타나 꿀밤을 한 대씩 때리거나 시끄럽다고 혼을 냈다. 엄마가 텔레비전 코드를 뽑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후에야 우리는 다시 얌전해졌다. 그리고 전설의 고향에 흠뻑 빠져들었다.
지나가는 과객은 먼먼 옛날 전설의 고향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세 명이나 되는 허름한 과객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엄마, 미쳤어? 모르는 사람을 불쌍하다고 데리고 오면 어떡해. 아빠도 없는 집에.”
“딱 보면 몰라.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서 뛰쳐나온 듯한 아주머니들이 흙바람 냄새를 풍기며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바짝 말라 푸석하고 어두운 얼굴로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거실 구석에 쌓아 놓은 커다란 보퉁이는 그녀들이 지고 온 삶의 무게처럼 군데군데 얼룩지고 해져서 초라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신산스러운 향기가 나를 안도하게 했다. 미세하게 올라오는 바람과 싸운 흔적, 상처가 아물고 다시 상처가 나기를 반복하며 강렬해진 삶에 대한 욕망. 그건 신성한 향료였다.
“김이랑 파래 팔아서 애들 공부시키려고 완도에서 오셨대. 여관이 비싸서 거리에서 자야 하나 고민하시길래 내가 모시고 왔어.”
완도 아주머니들은 잠만 자고 새벽에 장사를 하러 나가서 늦게 돌아왔다. 김이나 파래가 밥상에 계속 올라왔다. 조금이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며 아주머니들이 내놓은 고소한 방값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끔 아줌마를 보았다. 좌판도 없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앉아 흙바람을 맞고 있었다. 광주리에 가득한 김과 파래. 나는 그녀들이 빈 광주리를 들고 돌아오기를 바라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지나가던 과객인데 날이 저물어 하루 신세를 질까 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삶이 저물어 어둠의 짐승이 그를 물어 가든 말든 우리는 빠른 속도에 쫓겨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다. 어쩌면 그를 보거나, 처절한 외침을 들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도 안심할 수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세상.
우리 집에 나타난 과객은 젊고 잘생긴 선비도, 구미호가 살려주는 행운도 누려본 적이 없는 완도 아줌마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어 새끼들 입에 맛있는 것도 넣어주고 공부도 더 시키고 싶어 싸구려 여관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던 전설처럼 아련한 사람들.
손발 닳은 처지의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엄마는 가난한 이의 걱정을 한쪽 귀로 흘려버리지 못했고, 완도 아주머니들은 엄마의 따스한 심성을 믿었던 것이다. 어쩌면 완도 아주머니들의 바람과 싸운 흔적, 살고자 하는 강렬한 향료가 엄마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먼먼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벨을 누르면 인터폰으로 노려만 본 후 그의 이야기 따위는 듣지 않는다. 그들은 잡상인이거나 종교를 강요하거나 잘못 찾아온 사람들이다. 길을 잃은 과객이 찾아온다고 해도 문을 열어 줄 수가 없다. 그의 고달픔을 읽어낼 수 있는 후각과 청각이 퇴화되어 사라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