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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석 Jan 05. 2024

시간이란 무엇인가?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성 어거스틴(Sanctus Aurelius Augustinus, 354~430)의 시간에 관한 묵상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천지 창조와 관련해서 시작한다. 그는 먼저, 창조의 신비를 찬양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한다. 그는 태초에 하느님이 어떻게 천지를 창조했는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다(11권 1장).

신은 창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육체적 비평가들은 “신은 창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신은 창조 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가?” “만약, 창조 때로부터 새로운 행동에 의해 새로운 피조물이 생겨났다면, 어떻게 신을 영원한 존재라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으로 신의 창조를 조소하고 있었다. 

         조소적인 질문들에 대해, 어거스틴은 영원하신 분의 창조를 유동적인 과거와 미래의 운동으로 이해하려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창조 전에는 시간이 없었다. 영원은 계속되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없는 상태이다.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간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그것은 시간이 아니다(11편 13장)." 

            그에 의하면, 신은 세상을 시간 안에 창조하지 않으시고, 시간과 함께 창조하셨다고 말한다(11편 14장). 시간조차도 신이 만드신 것인데, 시간이 없는 창조 이전에 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있을 수 없다(11편 13장).

         이와 함께, 어거스틴은 신의 창조에 대한 의지는 영원한 것이라고 말한다. 

“창조주 하느님의 의지는 창조되지 않는다. 만약, 영원한 하느님의 의지에 의해 창조가 이루어졌다면, 창조는 영원으로부터 오지 않았는가? 하느님의 의지는 창조된 무엇이 아닌, 창조이전에 있었다. 하느님의 의지는 하느님의 본질이며 하느님의 본질이 창조 전에 없었다면, 하느님 본질은 영원하다 말할 수 없다(11권 10장)." 

시간이란 무엇인가? 

         어거스틴은 시간을 어떤 과학적 사실로 주장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영존하시는 하느님의 창조를 변증 하는 가운데, 시간에 관하여 묵상하고 고심했다. 어거스틴의 시간에 관한 고백은 그의 신학적 통찰과 함께 질문, 혼돈, 그리고 간구를 포함한다. 

“누가 시간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가? 누가 시간을 이해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대화 중에 시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가? 우리는 시간을 이해한다. 다른 이가 시간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 누가 “시간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시간을 안다. 하지만, 내가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그것을 모른다. 만약, 아무것도 흘러 지나가지 않는다면, 과거란 시간도 없고, 만약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는다면, 미래의 시간도 없다. 만약, 아무것도 현존하지 않는다면 현재라는 시간도 없다(11편 14장). 두 가지 시간- 과거와 미래는 무엇인가? 과거는 이미 지나가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만약, 현재가 언제나 현재로 있고, 그것이 과거로 지나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간이 아니라 영원일 수밖에 없다(11편 14장).”

“그러므로, 현재가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로 지나가는 것으로만 존재하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이 현재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현재 시간의 존재 이유가 지나가 없어져 버리는 데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면, 시간이란 비존재로 흘러 지나가는 것으로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거스틴은 아직도 시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고 하느님께 고백한다(11권 25장). 그의 시간 개념에 대한 고심은 그의 기도 속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나의 위로자이신 주여, 내 영원한 아버지시여, 내 삶이 고통으로 지나갑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없는 질서인 이 시간 속에서 산산이 찢어져 있습니다. 내 혼의 가장 깊은 장소에 있는 내 생각들은 혼돈스럽습니다. 당신에게 쏟아 놓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불로 정화시키시고 녹여 주소서(11권 29장)."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는가? 

         어거스틴은 세 가지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사실처럼 말하지만, 사실, 과거는 우리의 기억에서 나온다. 과거는 경과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들이다. 과거는 마음에서 형성된 인식의 이미지에서 나온 기억들이다. 과거 일이란 감각을 통과한 인식의 발자국 같은 것이다. 내 소년 시절이란 과거에 있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미래의 일도 비슷하다. 미래 일이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의 이미지이다. 이미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미래를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미래 일에 대하여 미리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리 생각하는 것은 현재 일이다. 미리 생각한 것을 우리가 행동으로 시작할 때, 그 행동은 현재에 있다. 존재하는 것은 현재에 있고, 미래에 있지 않다. 누가 미래를 본다면, 그건 미래 자체가 아니다. 미래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새벽하늘(현재)과 떠오르는 태양(미래)을 예로 든다. 새벽에, 나는 태양이 곧 떠오를 것이라 예견한다. 내가 보는 것은 새벽하늘이고, 내가 예견하는 것은 떠오를 태양의 이미지이다. 나는 그것이 떠오를 것이라 예견한다. 내가 보는 것은 새벽하늘, 떠 오르는 태양이 아니다. 새벽하늘은 떠오르는 태양 전에 있다. 이 둘은 현재라는 시간 안에 일어난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아직 없다. 미래의 태양은 현재의 것으로부터 예견될 뿐이다.  

         어거스틴은 전통적인 세 가지 시간을 모두 현재 시간으로 설명한다. 

“아마, 세 가지 시간이 있다면, 지나간 것의 현재 시간, 현재 것의 현재시간, 미래 것의 현재시간이 있다. 이 세 가지 시간은 사람 속에서 상관하여 존재한다. 나는 그것들을 볼 수 없다. 지나간 것의 현재시간이란 기억, 현재 것의 현재시간은 직접적인 경험, 미래 것의 현재 시간은 기대이다(11권 18장)."

         이와 함께, 그는 일반적인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에 반대하거나 다투고 싶지 않다. 적절하거나 부적절하거나 간에, 우리는 서로가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 때문이다(11권 20장)."

시간은 천체의 운동인가?

         어거스틴은 “시간이란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인가?”를 고심한다. 그는 물체의 운동이 걸린 시간, 즉, 동안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어떤 지식인이 태양, 달, 그리고 별들의 운동이 시간을 구성(constitute)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천체의 운동이 시간을 구성할 수 없음을 도자기 공의 물레를 비유해서 설명한다. 물레는 도자기 공의 의지에 의해 빨리 돌 수 도, 천천히 돌 수 있다. 아마, 그는 태양의 운동(지구의 자전)도 도자기공의 물레처럼 일정한 속도로 돌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여호수아기에서 태양이 멈추어 선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태양은 멈추어 섰지만 시간은 흘렸다”라고 말한다(11권 23장)."

시간을 잴 수 있는가?  

         어거스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잴 수 없다라면서, 시간을 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고심한다. 

“시간을 잰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잰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우리는 지나간 시간만을 잴 수 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잴 수 있는가?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미래 시간을 어떻게 잴 수 있나? 현재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만약, 시간이 연장(extension) 하지 않으면, 어떻게 현재라는 시간을 잴 수 있는가? 시간은 경과하므로 잴 수 있다. 하지만, 지나가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측정할 수 없다(11권 21장)."

시간을 어떻게 잴 수 있는가?  

         어거스틴은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고심한다. 그는 자신의 이해에 한계를 깨닫고, “주 나의 하느님, 깊도다 그 심오한 비밀이여! 내 죄의 결과가 나를 미치지 못하게 합니다. 내 눈을 고치소서, 당신의 빛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시간은 시간의 길이로 밖에 잴 수 없다. 무엇이 길이인가? 시간의 경과인가? 시간이 미래로부터 와서, 현재를 통과해서 지나가는가? 하지만, 현재 시간의 길이가 없다면 어떻게 시간을 잴 수 있는가(11권 21장)?" "시간의 길고, 짧음이란 무엇인가? 지나간 시간의 길고 짧음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어거스틴은 시간의 간격(interval of time)과 시간의 동안(duration of time)에 관해 묵상하고,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배운 – 과거 시간, 현재 시간, 그리고 미래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만이 존재하는가? 시간은 미래로부터 와서, 현재가 되고, 그리고 그것은 비밀의 장소로 가는가(11편 17장)?"

시간의 간격을 잴 수 있는가? 내가 재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재는 것을 내가 모를 수 있는가? 물체의 운동을 시간으로 잴 수 있는데, 나는 정작 시간 그 자체를 모른다. 진실로, 물체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한 운동의 시간을 잴 수 있다. 그는 운동의 기간에 관하여 고민한다. 

"나는 시간을 측정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없는 미래를 측정할 수 없다. 나는 현재를 측정하지 않는다. 현재는 길이(length) 없이 연장(extend)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잴 수 없다. 과거는 지금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측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나감 속에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이미 시간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시간에 대한 고백을 기도로 마무리한다.

“하느님, 고백합니다. 나는 아직 시간에 대해 무지합니다. 다시 고백하지만, 주여, 나는 내가 시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동안을 측정하지 않는 한, 오래는 아주 오래와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시간을 모르면서 어떻게 시간의 길고 짧음을 말할 수 있습니까? 오 하느님, 나는 당신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고,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에 빛을 주십시오. 오, 내 주 하느님, 나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11권 25장)."

영원에는 시간이 없다

         어거스틴은 영원과 시간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들과 씨름하면서 얻은 신학적인 통찰과 이해를 고백의 형식으로 남겼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과거란 현재시간에서의 기억, 현재란 현재시간의 직접적인 경험, 미래란 현재 시간에서의 기대이다. 그는 “미래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로 될 때, 시간은 어떤 비밀한 곳에서 나오고, 어떤 비밀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나가지만 무심코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우리 마음에 신비한 일을 한다. 시간은 내 마음에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기억을 심어 주고 인생을 보람으로 채워 줄 기회를 제공한다(4권 8장).

         어거스틴은 “신은 창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당신은 시간 속에 있는 사람과 같지 않으십니다. 변함없이 영원하신 당신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당신의 지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요, 또한, 당신의 행동에 어떤 나눔(division)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것이요,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든 못하든, 모두가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어거스틴은 시간의 존재하지 않는 추상성, 그 멈추지 않는 유동성 때문에 고민하지만 영원한 의미를 향하여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나의 위로자이신 주여, 내 영원한 아버지시여, 내 삶이 고통으로 지나갑니다. 나는 이제 지나간 과거를 잊어버리고, 지나가 버릴 것에 마음을 나누지 않으며, 하늘의 부르신 뜻을 향하여 마음을 집중하여 나아갑니다. 거기에서 나는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고, 다가오지도, 지나가지도 않는 당신의 즐거움을 관상할 것입니다(11편 29장).”

         영원에는 시간이 없다. 영원에는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다. 시간에서 영원으로, 지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랑 외에 무엇이 사람으로 시간을 넘어 영원으로 지향하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시간 속에서 사랑을 기억하고, 행하고, 그리고 고대한다. 이런 사람에게 영원은 이미 시작되었다.   


참고 문헌

어거스틴 (2022). 선한용 번역.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대한기독교서회. 

Augustine: Confessions. Newly translated and edited by Albert Outler. Library of Congress Catalog Card Number: 55-5021. This book is in the public domain. Scanned by Harry Plantinga, whp@wheaton.edu,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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