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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파워 Jul 03. 2024

어린시절 나에게 집이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


내가 어릴때 태어나고 자란집은 목수셨던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집이였다. 작은 시골 마을 큰길가 옆에 있었던 그 집은 평범했지만, 여러 특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마을은 아주 오래전에 소나무밭이었는데, 사람들이 터를 잡았을때 딱 한그루의 소나무를 남겨놓았단다.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소나무가 바로 우리집 마당 앞에 있었다.


덕분에 마을사람들은 우리집을 '소나무집'이라고 불렀고, 무더운 여름철이면 소나무 아래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또하나의 특별한 요소는 바로 우물이다.

우리 동네에서 총 3곳의 우물이 있었는데, 한곳이 우리 할머니댁앞에 있었고, 나머지 한곳이 우리집 마당에 있었고, 나머지 한곳은 마을 중간에 있었다.


옛날에는 수도시설이 없었기때문에, 우물이 있는 집은 부자(?)라고 했단다.

할머니집이나 우리집이 부자는 아니었지만, 수도 시설이 있기전에는 우물이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했을듯 싶다.


어느 겨울날, 그집의 작은방에서 태어난 나에게 그 집이 우리 소유라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이 세상에는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 자신의 집이 없어서 여기저기 이사를 다녀야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골 깡촌이라 제대로 된 슈퍼도 없고, 초등학교는 걸어서 한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있을 정도로 열악했지만 굶지는 않았고 집이 없는 설움도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이사를 나가는 사람도,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는줄 알았다. 평생 자기집에 부모가 살고, 자식들은 직장에 따라 다른 도시에 나가 사는 것이라고.


집으로 재산을 모으고, 자산을 불리는 방법이 있다는것도 전혀 몰랐던 그런 유토피아적 시골에서 평생 살았다면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생기지 않았겠지.




평생 우리집의 울타리에서 이사걱정, 집세걱정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일까?


시골집을 떠나 세상밖으로 나와 자취집을 구하고, 이사를 다니는 과정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집으로 옮겨 다니면서 사는 것은 설레임에 가까운 것이었다.


매일 똑같은 공간, 똑같은 풍경에서 반복되던 어린시절이 유난히 지루했기때문일까?

혹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시골 우리집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한번도 이사를 경험하지 않았던 덕분에 누렸던 주거 안정감때문일까?


나에게 이사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삶을 가볍게 변화시키고 싶을때 선뜻 시도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였다.

집을 사지 않더라도, 필요하다면 전세집을 구해서 언제든 이사할 수 있다고.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집'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 후, 집세 걱정과 이사 걱정 없는 우리집에서 살고 있지만

조금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과 부동산 재테크가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간다는건 쉽지 않고, 우리가 모은 돈도 많지 않지만

이사를 위해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고, 매주 부동산 임장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이사가자"


그런데 남편은 '이사'라는 말에 발작에 가까운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좁고 낡은 집에서 평생을 살겠다는 것인가?

처음에는 필요 이상으로 이사에 부정적인 남편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에게 집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사란 어떤 의미인지 알기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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