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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쉰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 공중전화 : 1집 - 1988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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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은
공공요금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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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줄줄이 오르는 물가에 허리가 휘어지다 못해, 척추 마디마다가 모두 사라진 것만 같은 요즘, 20여 년 동안 한 번도 오르지 않은 공공요금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기는 하지만, 한 때 우리 삶에 없다고는 상상할 수도 조차 힘들었던, 전 국민의 소통과 소식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그 존재를 찾는 게 더 어려운 '공중전화'.


공중전화는 1902년 50전으로 시작해 1966년 5원을 지나 1997년 50원으로 꽤 오랜 기간 동결되었다가 현재는 3분당 70원으로 가격은 2002년 인상된 이래 23년 동안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제국 말, 1902년 3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일반인이 이용 가능한 ‘전화소’가 문을 열면서 한국의 공중전화가 첫발을 뗐는데, 지금처럼 길모퉁이 박스가 아니라 교환시설을 갖춘 공공 전화방이었고, 서울 마포, 남대문. 영등포, 서대문 등에도 설치되었다고 전해 지는데, 당시로선 “민간이 전화를 쓴다”는 것 자체가 혁신이었다고 한다.


이후, 1960~70년대 한국은 집전화 하나 들이는 게 집값에 비견되던 시절도 있어 적체가 굉장히 심했기도 했는데, 이를 뒤집은 전환점이 국산 전전자식 교환기(TDX) 상용화와 함께한 1980년대의 통신 인프라 확충이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1 가구 1 전화’ 시대가 열리고, 거리의 공중전화도 촘촘해졌으며 또 하나의 혁신으로 여겨졌던 카드식 공중전화기는 1986년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도입·보급되기 시작했다.


레트로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삐삐가 울리면 곧장 공중전화로 달려가던 풍경'이 익숙했던 1990년대는 그야말로 공중전화의 전성기였다. 대도시 터미널엔 10대씩 묶인 부스가 서 있었고, 전화카드 수집은 마치 우표 수집하 듯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가지기도 했으며, 이와 관련된 전시회 등도 해마다 열렸다. 연예인 카드가 수십만 원에 거래되는 ‘카드 문화’도 이때의 일이기도 한데, 당시 공중전화 부스는 전국적으로 10만~15만 대를 오르내릴 만큼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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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에 담긴 근대 대학민국의 사진들


하지만 공중전화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이용량이 급감한다. 그럼에도 공중전화는 우리가 기본 사회적 인프라라고 보기 때문에, 완전 폐지는 쉽지 않다. 정부는 2016년 손실보전 제도를 손봐 중복 지역의 부스를 줄이고 필요한 복지시설, 공공장소, 재난대응 중심으로 재배치하도록 방향을 잡았다고 하는데,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공중전화가 유일한 연락수단이 됐던 사례를 보면서 재난 시 대체 통신망으로서의 필요성도 있다고 한다.


최근 공개된 자료와 보도를 종합하면, 전국 공중전화는 2018년 5만 9,162대에서 2023년 24,982대 수준으로 줄었고 2024년 이후 “약 2만 4,900대” 선으로 비슷하게 집계되는 것으로 보이며, 한 대당 월평균 이용은 30.8건, 통화량은 25.7분이기에 하루 평균 ‘1명이 1분도 안 쓰는’ 셈이라고 한다.


사라지는 중이라
더 선명히 보이는 것들


오늘 소개할 백 쉰 번째 숨은 명곡은 1988년 발표된 공중전화 1집에 수록된, 오태호 작사, 작곡, 공중전화 편곡의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라는 곡이다.


아마 공중전화라는 그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대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90년대 가수 이승환의 앨범과 더불어 K-Pop을 이끌었던 작곡가이자 훌륭한 기타리스트였던 오태호와 '기억날 그날이 와도'의 주인공 홍성민이 함께 몸담았던 그룹이라고 하면 꽤 많은 분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듯하다.


그룹 공중전화는 1987년 결성하여 레전드 오브 레전드 그룹이었던 들국화 공연의 오프닝 무대, 조덕배 전국 투어 세션 등으로 참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88년에는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인 1집을 발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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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발매된 그룹 공중전화의 앨범 표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그룹 이름을 '공중전화'로 지은 이유는 ‘전화기’처럼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고 싶어 했다고 하는데, 겨우 20살의 어린 나이었던 오태호는 당시 정말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 높은 기타 연주와 작사/작곡 능력을 보여줬는데 퓨전 재즈와 리리트너와 같은 뮤지션을 좋아했고, 잠시 신촌블루스에서도 연주를 담당하기도 했다.


'기억날 그날이 와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홍성민은 그룹 '광복군'의 멤버였다가 그룹의 멤버가 되었고, 드러머 김완영은 그룹 '진' 출신으로 강변가요제 은상을 받은 경력이 있으며, 홍성민, 김완영과 동갑내기로 음악활동을 같이하던 베이스와 키보드의 송현호가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앨범 발표 1년 뒤인 1989년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각자가 추구하던 음악의 길로 가기 위해 그룹을 해체하게 되는데, 같은 해 Rock in Korea 앨범에 오태호와 홍성민이 참여해서 부른 곡 '기억날 그날이 와도'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둘이 함께 작사/작곡/코러스 등으로 참여한 이승환 1집이 일명 '대박'이 나면서 그들은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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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과 오태호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앨범 'Rock in Korea' 표지


이후 오태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로, 홍성민은 1990년 자신의 첫 번째 독집 앨범인 '기억날 그날이 와도'를 발표하며 대중의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다만 홍성민은 2007년 갑작스레 급성 뇌출혈로 쓰러져 급히 응급실로 이송되었지만, 1주일의 투병 끝에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떠나게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시 울린 공중전화의 신호음!


다시 돌아와 공중전화의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그들은 그룹을 해체하면서 젊음의 끝에서 건넨 어정쩡하지만 진심 어린 작별인사였던 “마흔이 되면 다시 만나자”라고 약속을 했다고 하는데, 그 약속은 오래 맴돌다 현실이 된다.


리더 송현호를 중심으로 공중전화는 2010년에 재결성되었고, 2014년엔 26년 만에 정규 2집 <공중전화 Reloaded>를 내며 다시 전화기의 신호음을 울리기 시작했고, 2023년 'Rock'n Roll Zombie 2023'이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꾸준한 음악 활동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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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만에 재결성한 공중전화 2집과 이후 발매된 디지털 싱글 앨범 표지들


오늘 소개할 노래는 공중전화 1집에 수록된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라는 노래이지만, 사실 이 노래는 오태호가 한참 주가를 올리던 시절 이승환과 함께 만든 프로젝트 앨범인 '이오공감'이라는 앨범이 히트하게 되고 앨범 트랙 내에 오태호가 직접 부른 버전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원곡'이었던 공중전화의 버전이 다시 재조명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일렉 피아노의 반주에 따라 오태호의 묵직하고 블루스 색채가 강한 솔로 기타 연주가 시작되면, 1980년대 말 아스팔트 위로 희미하게 펼쳐지는 도시의 네온사인,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 놓 듯 휘감겨 있던 전선과 차디찬 수화기를 붙잡고 통화 넘어 신호음보다 나의 심장이 먼저 울리던 그 시절로 나를 안내한다.


이 노래는 전형적인 단조의 블루스나 발라드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장조의 느낌이 꽤나 오묘하고 또 절묘하게 다가오는 노래인데, 키보드 인트로와 기타 선율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구성과 편곡으로, 훗날 90년대 가요 발라드 문법에 적잖은 영향을 남겼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오태호식 멜로디도 좋지만, 역시 청량하고 가냘픈 홍성민의 보컬 음색이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와 쓸쓸하기만 했던 도시의 밤, 숨 막히도록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 청춘의 내 모습을 지워진 기억 속 어딘가에서부터 점점 더 선명해지게 만들어 버린다.


그댄 이 어둠이 나에게
얼마나 벅찬지 아나요


노래의 마지막에는 퓨전재즈가 연상되는 기타 연주와 편곡이 귓가를 즐겁게 하는데, 아마 이는 당시 오태호가 푹 빠져있던 GRP 계열의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공중전화는 ‘기기’가 아닌
‘장면’이다.


겨울밤 성에 낀 유리, 텅 빈 카드 잔액, 잊어버릴까 줄 서며 외우던 전화번호 숫자, 그리고 저 멀리 대답 없이 울리기만 하는 신호음.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닿고 싶지만, 동전 몇 개로는 모자라는 밤, 뒤에 줄 선 누군가의 한숨에도 끊지 못하던 말, 하지 못한 고백.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 마음의 체온.


숨 막히도록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울리는 신호음 끝에,

전화선 너머로 기다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도 또렷이 들리던 그때를 기억한다.

공중전화가 나에게 남겨준, 잊지 못할 가장 선명한 연결의 경험을....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

공중전화, 1집 - 1988


작사 : 오태호

작곡 : 오태호

편곡 : 공중전화

노래 : 공중전화


그댄 이 어둠이 나에게 얼마나 벅찬지 아나요

웃기만 하고 그냥 말은 안 해도 그럴수록 더욱 슬퍼져


어젠 그대에게 전화로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그댄 그런 날 알고 있었기에 멀리하려 했나요


그대 한마디 말이라도 내겐 오해를 만들지요

뒤늦게 와서 많은 후회를 해 봐도 그대 그림잔 여전히


나는 그대에게 아무런 바램도 기대도 없어요

꿈속에서 마냥 헤매이듯 안타깝기만 하죠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 그렇게 웃으며 다가 온

그댄 정말 내게 필요한가요


그대를 알 수가 없어요. 그대를 느낄 수 없어요

아~~ 이런 내겐 미움만 쌓여가나 봐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JUJX6lIH8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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