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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쉰하나

퍼즐, 럭비공, 금반지, 김의석 : 1집 - 1991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잘 지냈어?


희미하게 보이는 노트북 모니터, 지우고 또다시 쓴 지 몇 시간째, 가벼운 인사말조차도 채우지 못하고 아직까지 텅 빈 이메일만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늘어뜨리는 십여 년 전의 어느 늦은 오후의 공원벤치에 앉아있는 나.


그날도 난 이메일을 보내지 못했다.



그해 여름은 유독 짧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햇빛이 쏟아지는 낮에는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 소리가 담벼락에 눌어붙고, 금세 축축한 옷깃이 살갗에 바짝 달라붙었다가도 초저녁엔 갑자기 에어컨을 끄게 만드는 얇고 가는 서늘함이 겨드랑이 속으로 스믈스믈 스며들었다.


마치 요즘의 날씨처럼


그때로부터도 2년여 전, 나는 한 사람을 선택했다. 나의 미래를 정하는 일이고 또 현실적으로 이것이 더 나은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선택’보다 ‘종결’을 서둘렀던 것만 같다. 끝맺음의 편리함을 사랑의 용기로 착각했던 것이다.


사랑이라 생각해서 선택했었던 그 사람과의 인연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마른땅에 피어나는 작은 풀꽃과도 같이 내 심장으로부터 솟아나 머릿속 단단하게 묶어 놓있던 기억의 매듭들을 풀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여기와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그녀이기에 이게 최선이라는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로부터 쏟아질지 모르는 나를 향한 차디찬 원망의 목소리를 감당하기 싫었던 것 같다.


이젠 제법 싸늘해진 어느 새벽의 찬 공기에 창문을 닫으며

어렴풋이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다시 도망치고 있는 중일지도 몰라!'


선택한 사람에게서,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에게서,

무엇보다 결정의 책임에서 도망치고 있는, 못생기고 일그러진 내 얼굴을 발견했다.


나는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을 정하지 못한 채 빈칸으로 한참 두기도 했고, 마침표 하나에도 오래 머물기도 했지만 마치 편지 쓰는 인공지능 기계가 된 마냥 순식간에 내용을 채워 내려갔다.


보내기를 누르는 손가락이 망설일 때마다 밤공기가 더 깊어졌지만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Send' 버튼을 눌렀다. 화면 위 작은 종이비행기가 나에게 가볍게 인사하듯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3명 중 한 명은
사랑 선택을 경험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삼각관계(두 사람을 마음을 두고 결정하는 상황)”를 평생 한 번 이상 겪었다는 미국 성인이 3명 중 1명(33%)이라고 보고했고 연령이 낮을수록 경험률이 더 높다고 한다.


또한 일부의 사람들은 애초에 1:1 연애만을 이상향으로 보지 않는다는 다소 '충격적'인 조사도 있는데 폴리아모리(합의된 다자연애)'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10% 남짓, 그럴 욕구가 있는 사람은 17% 남짓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동시 교제 경험에 대한 응답이 남 37%, 여 48%로 보고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결과가 자칫 '양다리'를 정당화한다는 뜻은 결단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동시에 두 사람을 두고 연인이나 사랑의 선택을 하는 일은 극소수만이 가진 기괴하고도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1991년 발표된 미지의 앨범 김의석 1집 표지


오늘 소개할 백쉰한번째 숨은 명곡은 1991년 발표된 김의석 1집에 수록된 김의석 작사/작곡/편곡의 '퍼즐, 럭비공, 금반지'라는 노래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기로에 서게 되는 '선택'이란 어려움을 다소 재미있는 제목과 가사로 전달해 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김의석'이라는 가수에 대해 고개를 갸웃할 수 있을 듯도 한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곡을 소개하는 나조차도 어느 날 앨범 하나를 발매하고 사라져 버린 그의 근황이 굉장히 궁금한 미지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많은 스트리밍 서비스들이나 블로그, 유튜브 등 음악 정보를 제공하는 관련 사이트에서 몇 가지 추정할 수 있는 실마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잘못된 정보가 소비/유통되는 현실이기에 이를 사실로 단정하여 말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가 30여 년 전 당시 촉망받는 작곡가로 활동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데,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의 모든 노래들을 높은 수준의 작사/작곡/편곡의 실력으로 직접 담아냈고, 이어서 우리에게도 굉장히 잘 알려진 장필순 3집에 수록되어 있는 '도시의 하루'를 작곡한 장본인이자, 강인원, 배훈과 같은 레전드 아티스트의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미 숨은 명곡을 통해 수도 없이 언급되었던 레전드 뮤지션들인 김효국(건반), 조동익(베이스), 김영석(드럼), 손진태(기타), 강인원(디렉팅)의 참여만 보더라도 이미 앨범의 완성도를 짐작케 한다.


노래가 시작되면 음향기기 전문 회사인 Rolland에서 1988년 출시해서 많은 드럼 연주자들이 활용했던 전자드럼 머신인 'R-8'로 추정되는 미디엄 템포의 흥겨운 Percussion 리듬을 따라, 어쩌면 순수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김의석의 노래가 귓가에 슬며시 다가온다.


그의 노래는 높은 수준의 완성형 보컬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순수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기교 없이 차분하게 하나하나의 가사를 전달하는 그의 음색은 어쩌면 젊은 시절 친구들과 낡은 통기타에 밤새 노래를 불렀던 그때의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아련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에는 앨범의 디렉팅을 맡은 '강인원'의 느낌도, 기타를 맡았던 '손진태'의 감성도 함께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멋들어진 코러스의 편곡과 꼭 다시 한번 되돌려 듣게 만드는 레전드 '손진태'가 선사하는 기타 간주 부분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녀에게 메일 답장을 기다리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게 한다.


나 결혼했어요.
행복하길 바랄게요.


손바닥만 한 컴퓨터 메일 창 안에, 그동안의 소식이 짧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친구로 의지하며 지냈던 사람과 얼마 전 결혼했고, 함께 천천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나에게도 내 속도와 맞는 사람이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녀가 전한 메일 속 단어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왱왱 거리며 맴돌았다.


그날 저녁, 나는 보낸 메일 아래에 짧은 답장 하나를 더 더했다. 축한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행복하라고...


그리고 깨달았다.

선택은 감정의 최대치를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니라 같은 속도로 함께 걸을 수 있는 방향의 일치라는 것.


나는 그날 이후 아주 소소하고 작은 것들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회의나 미팅이 끝난 뒤 바로바로 전화하기, 사소한 약속을 ‘다음’이 아니라 ‘지금’으로 당기기, 신호가 깜빡이기 전이면 무조건 길 건너기 등 일상에서의 쓸데없는 '미룸'을 없애고자 했다.


창문을 조금만 열어 둬도 이젠 스르륵 가을이 방 안으로 들어와 앉는 계절, 그 사이의 시간들이 내게 남긴 문장은 어쩌면 굉장히 간단하다.


오늘의 선택이 쌓여 내일의 방향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함께 만들어 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너무 미래의 결과에 두려워하지 말자. 작은 선택 하나를 실제로 해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내게 지혜를 주오!




퍼즐, 럭비공, 금반지

김의석, 1집 - 1991


작사 : 김의석

작곡 : 김의석

편곡 : 김의석

노래 : 김의석


어떻게 해야 할지 그댄 아나요

퍼즐을 처음 만질 때 갖는 느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 마음


어떤 게 진짠지 그댄 아나요

깨물어 봐야 아는 금반지처럼


진실이 뭔지 사랑이 뭔지

앞을 모르는 안개 낀 인생


끝을 모르고 생겨나는 고민

어떤 걸 정할지 메뉴판의 갈등


이제껏 헷갈려온 모든 일들

앞으로 헷갈릴 그 많은 순간들


내게 지혜를 주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2n7HmS49L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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