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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쉰일곱

After the Storm, 모이다밴드 : 1집 모이다 - 2006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매년 찾아오던 불청객,
태풍, 올해 왔었나요?

한여름을 지나 조금씩 으슬으슬해지는 가을 오후, 오늘 소개할 백쉰일곱번째 숨은 명곡을 소개하려는 글을 쓰다가 문득, 늘 이맘때쯤, 아니 이미 좀 늦은 듯도 싶은 태풍이 올해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태풍이 한 번도 안 온 적이 있었나?'


그래서 이렇게 한 번도 태풍이 찾아오지 않았던 해가 있었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지기에 이리저리 자료를 좀 뒤적여 보았는데,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51년부터 지금까지 태풍이 오지 않은 해는 아직 3달이 남아있는 올해를 포함해 1988년, 2009년 단 3개년도에 불과했다.


특별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평균 3.5개, 한 해 최대 7개 이상의 태풍이 한국에 영향을 준 것을 생각해 보면 뭔가 특이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1951~2025 한국의 태풍 통계(기상청)


잠시 태풍에 대해 좀더 깊이 알아보자면, 우리나라에서 피해액이 가장 큰 태풍은 지난 2002년 제15호 태풍이었던 루사(Rusa)로 피해액이 무려 약 5조 1,479억 원에 달했고, 인명 피해도 사망과 실종이 무려 246명이었다고 한다.


가장 규모가 컸던 태풍은 2003 14호 태풍 매미(Maemi)로 한국 상륙 직전과 상륙 무렵에 최대풍속 약 60 m/s였고, 제주도에서 기록적 강풍과 최저기압이 약 950 hPa로 관측되어 대한민국 관측 사상 최강급 상륙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요즘에는 마치 동남아시아나 경험해 볼 수 있는 스콜과도 같은, 비바람을 동반한 국지성 폭우가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태풍이란 이름이 주는 존재감이 사실 예전만큼 못한 탓도 있지만, 매년 여름철 기상특보의 단골과도 같았던 그의 이름이 사라진 것도 몰랐구나 하는 탄식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뭐냐,
나 요즘 뭐 하고 사냐


오늘 소개할 백쉰일곱번째 숨은 명곡은 2006년에 발표한 모이다밴드의 1집에 수록된, 손상민 작사, 김종익 작사/작곡의 'After the Storm'이라는 노래다.


굳이 따지자면, Storm(폭풍)과 typhoon(태풍)의 의미는 좀 다른데, Storm이 typhoon을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태풍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강력한 폭풍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노래를 부른 모이다밴드는 사실 생각보다 그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밴드임에도 2010년경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스타 K2의 참가자 김지수가 부른 'Chocolate Drive'가 화제가 되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그룹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슈퍼스타K에서 모이다밴드의 초콜릿드라이브를 부르는 김지수


모이다밴드는 2000년부터 홍대·대학로 클럽을 무대로 활동했었고, 특히 이은미의 공연의 연주를 주로 맡았기에 '이은미 밴드'라고도 불렸던 실력파 세션들이 결성한 퓨전 재즈 그룹으로 초기에는 리더 이인관(색소폰)을 중심으로, 김종익(키보드), 최훈(베이스), 안병범(드럼), 박경호(기타), 마현권(보컬)이 멤버로 활동했다.


이들은 재즈, 라이브 공연을 위한 프로젝트성 그룹형태를 유지하다가, 2004년 “The Little Drummer Boy”이라는 캐롤 앨범을 만들기도 했고, 2006년에는 도시적 컬러의 퓨전재즈, 어덜트 컨템퍼러리 팝 등을 표방한 1집 Moida를 정식으로 발매하며 늦깎이 데뷔를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앨범 발매 이후 얼마가지 않아서 지인으로부터 그 존재를 접하게 되었는데, 한참 새로운 한국의 퓨전재즈 밴드와 노래에 목말라있던 내게는 사경을 헤매다 발견한 오아시스, 한줄기 희망의 빛과도 같았다.


그리고, 처음 듣게 된 'Chocolate Drive'.


아마 첫 청음 이후 족히 100번은 연속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수준 높은 연주까지, 뭐 하나 나무날 데 없는 웰메이드 퓨전 재즈에 어깨는 들썩들썩, 입꼬리는 삐죽삐죽, 나와 딱맞는 멋진 노래를 발견한 그 순간엔 항상 그렇듯, 얼마동안 반복해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모이다 밴드의 공연, 멤버 사진들


하지만 그들의 1집은 2010년 재조명을 받기 전까지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고, 그들의 활동도 유명무실해졌다. 워낙 라이브 밴드 중심의 프로젝트성 그룹이다 보니, 리더였던 이인관과 보컬 마현권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빈번한 교체가 이루어졌다.


거봐!
내가 뜬다고 했잖아!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게 된 2010년 난 내 주변의 지인 모두에게 약간은 거만한 말투와 제스처로 말했다. '좋은 음악은 언젠가 알려지게 되기 마련!'이라고...


갑작스런 유명세에 힘입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같은 해 모이다밴드 2집 Part.1(Single, 2010), 타이틀 'My Life Time'과 이듬해 Part.2인 Pray For You(Single, 2011)를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2014년 EP Runaway, 2017년 디지털 싱글 Horizon, 2019년 EP Wild Cat을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된다.


비교적 최근인 2020~21년에 들어서는 '신대방 블루스', '400KM', '카페인 중독' 등의 다양한 퓨전재즈 앨범을 선보이며, 라이브/클럽 공연도 함께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모이다 밴드가 발표한 앨범 표지들


오늘 소개할 백쉰일곱번째 숨은 명곡 'After the Storm'은 모이다밴드를 대중에게 알리게 된 'Chocolate Drive'가 함께 수록된 1집 9번째 트랙에 있는 곡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웹툰 스토리 작가와 작사가로 활동하는 비교적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자 여성 작사가인 손상민이 작사했고, 그룹 내 건반을 담당하고 있던 김종익이 직접 작곡과 편곡에 참여했다.


워낙 'Chocolate Drive'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기에, 모이다밴드는 원히트원더의 그룹으로 각인된 것도 사실이어서, 앨범 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연주곡 외에 멋진 노래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 같고, 오늘 숨은 명곡으로 소개할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 스며드는 고요의 적막이 연상되듯, Elec Piano의 연주로 시작되는 전주가 울려 퍼지고, 이어서 감정선이 짙은 보컬 마현권의 음색이 슬금슬금 어느새 내 마음속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발라드 법칙의 선을 넘어 멜로디에 따라 변조되는 재즈의 특성을 담아내며 재미나게 구성했는데, 마치 일본의 전설적 퓨전재즈 그룹 'T-Square'의 연주곡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역시 악기 연주에도 출중한 정상급 뮤지션들이 포진해 있기에, 중간 간주에 플레이되는 절제된 어쿠스틱 기타나 색소폰의 솔로가 너무 과하지 않아 더 멋스럽게 느껴지기만 한다.


함께했단 이유로
그립게만 느껴져



이 노래에서의 'Storm'은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랑의 순간들일테다.


미친 듯이 사랑했고 또 미워했던 그때의 순간순간,

마치 무섭게 비바람이 치던 폭풍, 그 전쟁 같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모든 걸 다 놓아버렸기에 이젠 숨 막힐듯 고요하기만 했던 혼자만의 시간에 마주 할 때면,

듣고자 하지도 않았고 또 들리지도 않았던 그녀의 절규와 외침이 내 머릿속에 다시 날 찾아 왱왱거리곤 했다. 그리곤 또다시 후회와 연민을 시작하는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래서 다시 이런 폭풍 따윈 없을꺼라 다짐, 또 다짐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마 늦은 태풍이 올지 모른다.

언제나 그렇듯, 예고도 없이...




After the Storm

모이다밴드, 1집 - 2006


작사 : 손상민

작곡 : 김종익

편곡 : 김종익

노래 : 모이다밴드


혹시 너는 알고 있는지

흔한 우리 이별에 가끔 힘들어 우는

내 모습


만약 당연하게 여겼던

이름 없는 날조차 이제와 돌아보면

함께했단 이유로 그립게만 느껴져


You 어디에 있어도

그누굴 만나도 나만은 잊지 마요


You 너만 바라보던

너만을 생각하던 바보 같던 나를


You 말할 수 없어도

들리지 않아도 난 여기 이 자리에


그런 내 모습 나조차 잊어도

너만은 내 안에서 변치 않을 걸 알아


You 시간이 흘러도

모든 게 변해도 나만은 잊지 말아요


You 너만 사랑하던

너만을 미워하던 바보 같던 내 맘을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HgejrmHH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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