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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쉰여덟

고양이와 나, Casker : 2집 Skylab - 2005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그래서 나는,
테토남이야? 에겐남이야?

'그건 또 뭔데?'


얼마 전 후배들과의 모임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테토남, 에겐녀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테토남/테토녀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에서 온 말로 보통 “직설적·주도적·활동적·마초/보이시한” 이미지로 설명되고, 이와는 반대로 에겐남/에겐녀는 에스트로겐(estrogen)에서 온 말로 “섬세·다정·감정 교류·배려형” 이미지로 설명된다고 한다.


사실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느새부터 신조어를 따라가기 벅찬 나와 같은 아재들에겐 수십 년 동안 단순히 4가지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갈라 치기 해왔던 게 어쩌면 정말 쉽고 단순했으며, 간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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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 거 뭐 그래도,
MBTI보다는 낫지


중간중간 보다 복잡하고 상세한 성격 테스트와 같은 게 없었던 것도 아니고, 별자리나 사주, 타로와 같은 전통적인 점술이나 역술과 같은 것들도 다른 측면에서 꾸준히 사람의 성격을 규정해 오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전부터 슬금슬금 그 모습을 드러낸 MBTI는 이젠 단순히 유행이라 말하기엔 어려운, 전 국민이 활용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듯하다.


사실, 사람을 몇 가지의 유형으로 규정하고 싶은 우리의 욕망은 과학이나 심리학 그리고 대중문화가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 왔는데, 흔히 혈액형 성격론이라 불리는 방법은 1920년대 일본의 심리학자 후루카와 다케지가 '혈액형별 기질'이라는 논문을 내며 대중화의 불씨가 붙었다. 1970년대 노미 마사히코가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궁합', '혈액형 인간학' 등의 저서가 일본 내 큰 인기를 얻으며 급속히 퍼져나갔고, 이후 한국·타이완 등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줄임말로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인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스위스 정신과 의사였던 '카를 융'의 저서 '심리 유형'의 영감을 받아 1944년에 개발한 지표로 사람의 성격을 16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2차 세계 대전 이후 남성이 지배적이던 산업계에 여성이 진출하게 되자, 이들이 자신의 성격 유형을 구별하여 각자 적합한 직무를 찾을 목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까지 뿌리 깊었던 혈액형 성격 담론이 과학적 근거 논란 속에 힘이 약해지자, 보다 세분화된 16개의 유형을 제시하는 MBTI가 가볍고 재미있는 자기소개 틀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러한 유행의 원인으로는 팬데믹 시기의 '저비용 자기 탐색 놀이'로 K-팝 아이돌들이 MBTI를 방송·콘텐츠에서 자주 공개하면서 팬덤을 통해 대중 확산이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이, 학교, 지역 등으로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려는 집단주의적 ‘관계 규칙’과 라벨을 선호하는 한국 사회의 관계지향적 맥락과도 맞물려, MBTI의 라벨이 ‘상대 파악의 편의 장치’로 받아들여졌다는 해석도 있고 일부 채용 면접에서 MBTI를 묻는 사례, 데이팅 앱의 MBTI 표기/매칭, 학교·동아리·수업 활동에서의 활용 등 ‘플랫폼화’가 진행되며 생활 접점이 보다 확고히 넓어졌다고 한다.


Dog vs Cat,
MBTI와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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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MBTI 타령이냐 궁금해하겠지만, 오늘 소개할 숨은 명곡이 고양이를 주제로 담은 노래이고 인류의 대표적 반려동물로 매번 Dog파와 Cat파가 항상 나뉘어 답도 없는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선호의 이면에는 개인의 MBTI 성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에겐남, 테토녀로부터 시작된 후배들과의 재미있었던 술자리의 잡담이 시작이긴 하지만...


지난 숨은 명곡 백마흔세번째에서 소개한 '시인과 촌장'의 '고양이'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 인구의 약 4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75%가 반려견, 25%가 반려묘로 나뉘어 있으며, 최근 반려묘의 숫자가 대폭 늘고 있다고 한다.


https://brunch.co.kr/@bynue/205


재미있는 사실은, 개·고양이 전반에 걸쳐 여성이 반려동물에 대한 애착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고, 연령이 낮을수록 반려묘를, 연령이 높을수록 반려견을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는 대도시·아파트 비중이 높을수록 양육의 편의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양이를 선호하고 반대로 교외나 단독주택에 주거하여 활동성이 높은 환경의 경우는 반려견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개를 좋아하는 사람의 성향과 고양이를 선호하는 사람의 성향은 다르다고 하는데, Dog파의 경우는 외향성·우호성·성실성이 높고, Cat파의 경우는 개방성이 높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내향의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를 MBTI로 다시 매칭을 해본다면,


Dog파는 E(외향), J(계획/규범), F(대인배려) 쪽이 섞인 유형으로 E/F/J 축과 부분 대응하며 구조·루틴·사회적 상호작용 선호가 개 양육 방식과 맞물리는 경향이 있고, Cat파의 경우는 I(내향), N(개방/상상), P(자율/탄력) 쪽이 섞인 유형으로 I/N 축과 부분 대응되며 자율적 교감·조용한 동반 선호와 맞물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름 열심히 조사하고 또 구분을 해 놓고 보니, ENFJ인 나는 기본적으로 개를 좋아하는 성향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개와의 쓰라렸던 지난 세월의 아픔이 있기에 고양이를 보다 선호하게 되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기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참 의미도 없고 쓸데도 없는 짓거리를 한 것 같기도 하다.


누가 궁금해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뿌듯은 하네 뭐.


오늘 소개할 백쉰여덟번째 숨은 K-Pop 명곡은 2005년 발매된 Casker 2집, Skylab에 수록된 이준오 작사/작곡, 이진욱 편곡의 일렉트로니카 곡인 '고양이와 나'라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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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ker의 정규앨범 표지들


아마 Casker라는 그룹이 생소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멤버 중 리더인 이준오가 원맨밴드로 활동하던 1999년 국내 최초의 테크노 컴필레이션 앨범 Techno@Kr에서 'Persona'라는 곡을 싣게 되면서 K-Pop에 데뷔했고, 올해 벌써 데뷔 20여 년이 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렉트로니카 레전드 그룹이다.


그는 2003년 Casker의 첫 번째 앨범인 '철갑혹성'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향후 한국 일렉트로니카 초창기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어 2006년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선정 “한국 최고의 전자음악 앨범”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2004년경부터 보컬 '융진'과 건반 '이진욱'이 합류하여 2집부터는 3인조로 활동하게 되는데, 3집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진욱의 탈퇴로 이후부터는 이준오와 융진 남녀 2인조의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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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Casker, 좌(이준오), 우(융진)


Casker의 음악세계를 논할 때, 초창기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문법을 대중적으로 들리게 만들었다는 의견이 많은데, 다소 어렵고 복잡하게 들릴법한 장르적 특성을 팝, 재즈, 라틴, 보사노바 등의 요소를 가미하여 말 그대로 듣기 편한 스타일리시 라운지, 서정적인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이고 있다.


그들은 이준오와 융진 듀오 체제가 확립된 2005년 2집 Skylab 발매 이후 2006년 홈레코딩으로 제작된 3집 'Between'을 통해 평단의 호평과 활동 반경을 확대하게 되었고 2008년 4집 'Polyester Heart', 2010년 5집 'Tender', 2012년 6집 '여정(旅程)', 2015년 7집 'Ground, Pt.1'까지 총 7개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그들의 정규앨범이 2015년 7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교적 최근인 2021년까지 '소인'이라는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한 음악작품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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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발표한 Casker 2집 'Skylab' 앨범 표지


오늘 소개할 백쉰여덟번째 숨은 명곡은 2005년 2집 Skylab에 실린 '고양이와 나'라는 노래로 리더인 이준오가 작사/작곡을 건반 이진욱이 편곡을 그리고 보컬 융진이 노래를 불렀다.


70~80년대가 연상되는 어느 유럽 속의 거리에 우주복을 입고 서있는 한 사람,

그리고 그 앞에 앉아 있는 고양이.


개인적으로 이 앨범 재킷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일러스트와 실제사진을 조화롭게 합성한 것부터, 거리의 사람들의 원근감을 위해 블러처리를 한 센스, 앞면 재킷에는 주인공이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듯한 모습, 뒷면에는 앨범 몇 장을 만들어 놓고 고양이와 떠나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 디테일까지, 뭐 하나 꼬투리 잡을 게 없는, 참 감각적이고 멋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귀여운 고양이의 눈빛을 이제야 발견한 듯, 가볍고 몽환적인 융진의 웃음소리가 좌우로 펄럭이며 귓가를 울리고, 이어지는 일렉트로니카 특유의 비트와 신스, Clav와 함께 그녀의 허밍으로 노래는 시작된다.


나만 하염없이
보고 있었지


Casker의 노래들을 이야기하면서 보사노바와 같은 라틴 계열의 장르를 빼놓을 수 없는데, 어쩌면 일렉트로니카 장르에 가장 적절하고도 멋들어지게 이를 융합하고 접목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


이 노래에서도 1절이 끝나고 이어지는 노래에서 등장하는 보사노바 리듬과 하모니에 절로 웃음을 짓게 되는데 드럼 비트가 잠시 빠지는 구간에서는 이게 일렉트로니카에 보사노바를 접목한 것인지, 아니면 보사노바에 일렉트로니카의 양념을 한 줌 뿌린 것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


기분 좋은 Vibraphone 솔로와 일렉트로니카에 흔히 등장하는 효과음들이 연결되는 중간 부분의 간주를 지나면 Jingle과도 같이 반복되는 멋진 융진의 화음과 함께 노래는 서서히 끝마침을 향해 간다.


오빠는 에겐남이에요!


그날 후배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어쩌면 난, 시크한 테토녀 같은 고양이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말고!




고양이와 나

Casker, 2집 Skylab - 2005


작사 : 이준오

작곡 : 이준오

편곡 : 이진욱

노래 : Casker


넌 조용히 동그란 눈으로 나만 하염없이 보고 있었지

무지개 담요도 작은 방울도 너에겐 중요하지 않았던 거야


넌 나 가는 줄도 모르고 또다시 너 아픈 줄도 모르고

그렇게 손을 내게 건네줬어 내 기억만을 좇아 널 돌아보지 못한 내게


넌 조용히 내 무릎에 앉아 슬쩍 졸리운듯 눈을 감았지

작은 떨림을 따스한 온기를 얼어있던 나에게 주려 한 걸까


넌 나 가는 줄도 모르고 또다시 너 아픈 줄도 모르고

그렇게 손을 내게 건네줬어 내 기억만을 좇아 널 돌아보지 못한 내게


또 어떤 얘길 해야 할까 너에게 가녀리고 귀여운...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ZlloJoocD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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