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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쉰아홉

제발, 최성원 : 우리노래전시회 1집 - 1984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저희는 40년 동안
한 번도 안 싸웠어요!

'에이~! 싸울 일이 뭐가 있어요?'


가끔씩 금실 좋은 부부로 TV에 등장해 수십 년간 알콩달콩 사람과 사람, 연인 간의 인연을 이어온 분들의 인터뷰를 듣게 될 때가 있다.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내 안의 솔직한 맘을 조금만 펼쳐 놓자면, 마치 장사꾼이 '돈이 안 남는다!', 낚시꾼이 '진짜 대물이 도망갔다!', 도박꾼이 '거의 이길 뻔했다!'와 같은 상투적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수백만 번을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그런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해도, 이는 거창하게 '사랑'이라는 잣대까지 들이대지 않고 단순 사람 간의 '관계'의 측면에서만 봐도 아예 서로 관심이 하나도 없어야만 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속세에 물들여져 '넌 참 냉소적이야!'라는 질타 때문에 반발짝만 뒤로 물러선다고 해도, 수십 년의 기간 동안 두 연인이 한번도 싸우지 않는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그건 아마 둘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8일 오후 08_44_01.png


정말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10000000% 내 맘과 정확히 똑같은 의식과 행동을 가진 사람이거나, 아님 둘 중에 하나 혹은 둘 모두 서로에게 불만과 불평을 무조건 참고 있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연인 중 3%는
전혀 말다툼을 하지 않는다고?


'평소 연인과 얼마나 자주 말다툼/의견충돌이 있느냐'는 한 설문조사에서 “주 1회 이상”이 31% 내외, “월 1회 내외”가 약 28%, “연 1회 이하”가 약 32%로 97% 이상이 말다툼 등 의견 충돌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여기서 깜짝 놀랄 수치 중 하나는 무려 3% 정도가 전혀 말다툼이나 의견 충돌을 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신뢰성 있는 수치라고 믿기는 어렵고, 아직까지 이를 받아들이기엔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 세상엔 정말 연인까리 싸우지 않는 초인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나와 연인의 인연을 잠시라도 스쳐간 모든 여인들과 사소한 말다툼조차 없었던 관계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인연의 끈 하나하나마다 조금씩 강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기도 했으며, 금세 미친 듯이 사랑하기도 했다.


가끔은 정말 밉고 짜증 나서 도저히 감당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고, 이를 잘 넘기지 못하면 결국 우린 단절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나의 맘을 가다듬게 해 준 노래가 있다.


들국화 '제발'의 원곡


오늘 소개할 숨은 명곡 백쉰아홉번째 노래는 1984년 우리노래전시회 1집에 수록된 최성원 작사/작곡/편곡의 '제발'이라는 노래다.


이미 지난 숨은 명곡 일흔일곱번째 포스팅인 이광조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할 때도 언급했지만, 우리노래전시회의 많은 노래들은 이후 K-Pop의 음악적 기틀이 되는 레전드 아티스트와 앨범에 재수록되거나 재편곡되기도 했는데, 이 노래 또한 들국화 2집에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https://brunch.co.kr/@bynue/134


두곡의 차이를 굳이 설명하자면, 당연히 보컬이 '최성원' vs '전인권'으로 그 느낌이 전혀 다르며, 편곡이나 노래의 스타일도 원곡은 포크적인 성향이 보다 강한 반면, 들국화의 버전은 보다 락의 요소들이 군데군데 물들여져 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개인적으로는 들국화에 수록된 '제발'이 훨씬 맘에 드는데, 워낙 성향이나 느낌이 틀린 두 K-Pop 레전드 최성원과 전인권이 함께 만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작품이기에 그렇다.


원곡인 최성원의 노래는 요즘 유행하는 '에겐남'과 같은 스타일로 연인에게 부탁하고 배려를 원하는 것 같다면, 들국화의 제발은 '테토남'이 그러한 것처럼 남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울분과 바램을 토해내는 것만 같아서 가끔은 속 시원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은, 연인 앞에서 '배려'와 '양보'라는 멋진 가면을 쓰고, 혹시 상처받을까 봐 내 안의 이야기들을 솔직히 털어 놓지 못하는 '에겐남'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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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발매된 우리노래전시회 1집 표지


피아노의 간결한 전주가 마무리될 즈음, 묵직한 베이스와 함께 세상 부드럽고 온화하기만 한 최성원만의 보컬이 내 마음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들국화의 버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역시나 두 거장 보컬이 가지는 음색의 차이가 가장 크다고 할 터인데, 일부 전주의 길이, 어쿠스틱/일렉기타의 연주 추가 등을 빼놓고서는 비슷한 구성이라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노래가 진행될수록 들국화의 버전은 역시 그룹사운드라고 할 드럼, 베이스, 기타 등의 합주 요소나 코러스, 추임새 등이 어우러져 보다 강인한 남성이 느낌이 점점 강조되는 반면, 이 노래는 여전히 부드럽고 자상하기만 하다.


참고로 들국화 버전의 '제발'에서 '한낱 외로운~'이라는 가사 이후, 전인권이 아래에서부터 음을 올려 부르는 추임새와 같은 허밍은 마치 그동안의 쌓여왔던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 듯 너무나 강렬해서 십 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원곡에서의 최성원은 그런 감정의 절제가 보다 도드라 진다. 어쩌면 그게 이 노래의 매력일 수 있다.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이 노래 중간 기타 솔로를 베이스로 유명한 조동익이 연주했다는 것인데, 원래 베이시스트로 알려진 그가 자기보다 연배가 높았던 조원익이 참여하자 기타 연주로 세션을 변경한 것처럼 추정되는데, 그의 귀한 기타 연주를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예전 여자친구와 노래방을 갔다가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그녀는 곰곰이 이 노래의 가사와 내 노래를 들어보더니, 자리를 벅차고 나가며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오빠를 힘들게 해?'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가끔 노래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이 노래를 부르다 큰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하자.


남자 노래방 금지 1위는 임재범의 '고해'가 아니다.

바로 '제발'이다.




제발

최성원, 우리노래전시회 1집 - 1984


작사 : 최성원

작곡 : 최성원

편곡 : 최성원

노래 : 최성원


제발 그만해 둬 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니

너도 알잖니


다시 생각해 봐 눈을 들어 내 얼굴을 다시 봐

나는 외로워


제발 그만해둬 새장 속의 새는 너무 지쳤어

너도 알잖니


다시 생각해 봐 처음 만난 그 거리를 걸어봐

나는 외로워


난 네가 바라듯 완전하진 못해

한낱 외로운 사람일 뿐이야


제발 숨 막혀 인형이 되긴 제발 목말라

마음 열어 사랑을 해줘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XtKvIKT95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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