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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예순셋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현우 : OST - 2001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저도,
이혼했어요!


쳇바퀴 돌 듯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것 같고, 오늘과 내일이 똑같을 것만 같은, 그저 그런 삶의 반복이 계속되는 우리들에게는 사실 세상이 천천히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그때마다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세상이 이미 내게 보냈던 수북이 먼지 쌓인 '변화'의 통지문들을 늦게나마 발견할 때면, 그 때야 말로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라는 탄식 섞인 한숨을 길게 쭉 뿜어 내기도 한다.


AI 로봇이나, ChatGPT나, 자율 주행 택시와도 같은 신문물 같이...


이런 첨단 기술이 우리 삶을 바꾸는 변화가 보다 피부에 '팍팍' 와닿긴 하지만, 뼛속 깊이 자리 잡았던 사회 속 통념이나 문화가 어느새 달라진 것을 체감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이 있는데, 바로 '이혼'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 속에서 '이혼'이란 마치 평생 지울 수 없는 '흠'처럼 생각되어 왔던 게 사실이지만, 이젠 '자랑'까진 아니더라도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세상이 되었기에, 그 불합리한 족쇄 문화의 끄나풀이 사라지고 있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이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58.4%였던 반면 2022년에는 27.1%까지 떨어져 이혼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이 확 줄어들기도 했고,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오른 이혼율 때문에 이혼을 '사건'이 아닌 '일상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숨겨야 할 치부’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정당한 선택지’로 이동하게 된 거다.


하지만 여전히 이혼은 인식의 변화를 떠나 서로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씩은
행복한 결혼을 꿈꾼다


이와는 별도로 아직 “사랑 때문에 결혼한다”는 인식은 압도적으로 강하기만 한데, 미국 성인 전체의 88%가 사랑이 결혼을 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했고, 이미 결혼한 사람들 중에는 93%가 사랑이 결혼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중요한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의 마지막 결실 = 결혼'이라고 ‘필수 코스’로 보는 인식은 예전보다 점점 약해지고 있는데,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결혼은 꼭 필요하다'는 응답이 50% 안팎 또는 그 이하로 떨어졌고, 비혼·동거·비혼출산·이혼·재혼 등 다양한 관계 방식이 등장하면서 '사랑의 완성=결혼'이라는 등식은 점점 설득력이 약해지는 중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혼한 사람 100명 중 약 5~10명은 같은 사람과 다시 사귀거나 재혼을 시도하고, 그중 10명 중 3명 정도는 다시 이혼, 적어도 일정 기간 7명 정도는 유지된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은 '사랑의 최종 결실'이 아닌 '행복을 찾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스틸 사진들


오늘 소개할 백예순세번째 숨은 명곡은 2001년 개봉한 박흥식 감독, 설경구, 전도연 주연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OST에 실린 동명의 곡으로 이숙연 작사, 조성우 작곡/편곡, 이현우가 보컬로 참여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당시 신인이었던 박흥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자신이 직접 각본을 썼으며 백상예술대상의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잔잔한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라 할 수 있는데, 간략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아파트 단지 안 작은 은행에서 성실히 일하는 노총각 대리 김봉수(설경구)는 어느 날 지하철이 멈추고 모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 자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깨닫고 처음으로 회사를 결근하면서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은행 맞은편 보습학원 강사 정원주(전도연)는 매일 봉수를 마주치며 조용히 그를 좋아해 왔지만, 봉수는 그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게 되는데, 어느 날 은행 CCTV 화면 속에서 카메라를 향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찾는 원주의 모습을 보고, 둘은 서서히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노래의 작곡/편곡자이자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조성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음악 프로듀서로 김성수 감독의 영화 '런어웨이'로 데뷔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8월의 크리스마스', '여고괴담', '플란다스의 개', '꽃피는 봄이 오면', '만추' 등의 영화에 참여했다.


작사가 이숙연은 잘 알려져 있는 국내 대표 영화 각본가로 라디오 구성 작가로 일하다 작곡가 조성우와의 인연으로 영화 '봄날은 간다'를 공동 집필하며 영화계에 데뷔하게 된다.


가수 이현우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이 노래를 부른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가수 이현우(본명 이상원)는 1991년 '꿈'이란 노래로 데뷔하게 되는데, 이 노래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오랫동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1위를 하게 되면서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게 된다.


이현우의 데뷔(좌) 및 현재(우)의 사진


하지만 그는 2집의 앨범을 준비하고 발매를 앞둔 1993년 1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고 모든 방송사로부터 출연 정지를 받게된 그는 바로 쫓기듯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데, 이런 사건 사고 속에 1월 말 발매된 그의 2집은 그와 함께 그렇게 잊혀졌다.


그는 1995년 시나위, 아시아나, H2O 등 한국 Rock을 대표하는 베이시스트였던 김영진과 함께 문차일드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앨범을 발매했지만, 아쉽게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이마저도 수백 장의 음반 발매에 그치고 만다.


그는 어렵게 1996년 3집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라는 노래가 인기를 얻게 되고, 이어서 1997년에 발표한 4집 '헤어진 다음 날'이 가요 Top 10의 마지막 골든컵을 수상하게 되면서 완벽히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이현우의 앨범 표지들


이 무렵 MBC에서 저녁 늦은 시간 방송을 시작한 '수요예술무대'가 내 생애 최애 음악 프로그램 중에 하나로 기억하는데, 당시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국내외 유명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출연했기에 그들의 음악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던 일이었고, MC를 맡았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이현우의 뭔가 어설픈 케미 또한 매력이 철철 넘쳐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솔직 담백한 일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연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현우라는 뮤지션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그가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실험정신을 이해하게도 되었고, 가끔 김광민과 함께하는 콜라보에서는 '재즈'의 장르에서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나 감성이 참 새롭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숨은 명곡도 그런 이유로 꼭 소개하고픈 작품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OST 앨범의 표지


감미로운 슬로우 템포로 시작되는 피아노 연주는 마치 입안에서 공명을 만들어 뱉는 듯한 이현우 특유의 창법과 더불어 우리들 귀속을 맴돌기 시작하고, 마치 클래식 연주의 한 소절이 생각나듯 현악기의 향연들이 그 위를 어지럽게 수놓기 시작하는데, 연애를 어찌할 줄 모르는 순수한 청년의 서글픔이 가슴에 와닿도록 그저 애처롭고 서글프기만 하다.


노래는 두 번째 소절에 들어서부터 브러시 스네어와 재즈 피아노로 물들어 찐득찐득한 느낌을 더하게 되는데, 그렇게 들리는 마지막 가사가 마치 비수처럼 내 맘속 치부를 콕콕 찌르듯 숨기고 싶던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벌게지는 얼굴에 민망해 지기까지 한다.


밥 먹었니 물어 줄
편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세 번째 소절에 들어서는 전형적인 4비트 스윙 재즈와 빅밴드 브라스가 어우러진 팝-재즈로 변모하는데, 마치 '이건 진지한 발라드가 아니라, 약간 웃기면서도 싱겁게 씁쓸한 노래'라며 뒤뚱뒤뚱 어설픈 춤을 추며 정신승리했던 그 옛날 나의 모습이 뒹엉켜 생각이 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속앓이 했왔던 울분을 모두 토해 내 듯, 처절히 느껴지는 그의 절규가 남의 이야기만 같지 않은 건 나도 어쩔 수 없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솔로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 같다.


한참 치졸하고 낯 부끄러운 우리 시대 노총각의 난리 부르스가 끝난 뒤 잠시, 노래는 다시 처음의 슬로우 템포로 돌아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깨달은 듯, 슬그머니 감정을 절제하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옆을 보면
늘 아무도 없는 나


노래는 다시 빅밴드 스윙으로 정리되며 끝나게 되지만, 여전히 진한 여운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이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는 것만 같다.


'있을 땐 혼자 있고 싶고, 혼자일 땐 함께 하고 싶은..'

나의 간사함과 이기주의의 극치를 들켜버린 탓일까?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현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OST - 2001


작사 : 이숙연

작곡 : 조성우

편곡 : 조성우

노래 : 이현우


멍하니 TV를 보다가 부딪히면

툭 하는 말 잘 자요

흔한 한마디 해주면 좋은데


무심코 뒤돌아보다가 마주치면

밥 먹었니 물어 줄

편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혼자 지루해서 해보는 말들

"일찍 들어와"

"전화해 줄게"

거울 속에 날 보고 있네

나나나나나나나~나


창 밖을 보며 저 사람일까?

맞는다구요?

여길 봐요 내가 있어요

아내가 돼주오 몸만 오면 돼요


내내 뭐라 얘길 해 보면

나 혼자 중얼거리네

거울 속에 날 보고 있네

나나나나나나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네~


멍하니 TV를 보다가

옆을 보면 늘 아무도 없는 나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vaYd59M8k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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