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변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감싸며

by 런잉맘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의 일이다. 몇 개월간 고된 투잡 끝에 퇴사하고 며칠을 쉬는 동안, 엄청난 불안감과 우울감이 나를 덮쳤다. 국제전화까지 해가며 엉엉 울며,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부짖던 나에게 엄마는 뭐라고 했더라.

지금도 나는 꽤 자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견디지 못하며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스스로에게 잔인한 말을 던질 때가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늘 무언가를 해내야만 했고, 그래야만 살아남는 줄 알았고, 해내야 괜찮은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남들이 만든 기준 안에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20대의 나에게도, 지금의 나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여전히 죄악처럼 느껴지고, 실패할 것 같고, 모두에게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을 안긴다.

30대의 나는 조용히 되묻고 싶다.

좀 게으르면 안 되나? 사람이 숨을 고르면 덧나나?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하루를 꽉 채우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만한 성과가 없어도,

나는 살아 있고, 존재하며, 계속 나를 지켜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게으름은 때로 삶이 나에게 건네는 작은 정지의 신호다. 너무 오래 달려온 나를 잠깐 멈추게 하기 위한, 숨이 가쁜 나에게 다정하게 건네는 쉼표.

그러니 이제 나는, 나의 게으름을 탓하기보다, 그 시간 안에서 나를 조용히 감싸 안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게으름이라 이름 붙였던 그 순간조차, 사실은 나를 회복시키는 방식 중 하나였다는 걸, 나는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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