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만 편안해질 수 있는 서로 같은 너와 나.
그때의 난, 그가 스마트폰을 보고 재밌어하면 "뭐가 그렇게 재밌어?"하고 화면을 같이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화들짝 놀라며 화면을 꺼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명을 장황하게 해주긴 하지만 왜 저렇게까지 놀라는 건지 나의 궁금증은 날로 커져만 갔다.
'왜 저렇게 숨기지? 왜 저렇게 놀라?'
불쾌함이 느껴졌다.
이해되지 않던 남편이었는데 막상 내가 겪어보니 당황스러웠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컴퓨터 작업을 해야 했었는데 남편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감지되면 어색함이 흘렀다. 결국 화면을 가리며 쳐다보면 불편하다고 일러줬다. 숨길만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살짝 쳐다보는 것뿐인데 이렇게 불편할 수가! 공간을 침범당하고 관찰당하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궁금해서 스쳐 지나가듯 쳐다본 걸 수도 있겠지만 함께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껴졌다. 아마 남편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에서도 어색함이 흘렀다. 편하게 와구와구 먹고도 싶었지만 추잡스럽게 느껴졌다. 나이프를 꺼내 햄버거를 잘라먹고 페트병째 음료를 마시는 법이 없었다. 남편 또한 조심스러웠는지 수저나 젓가락을 식탁이나 바닥에 떨어뜨리곤 했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서로 깜짝 놀라며 불쾌해했다.
한 번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바라만 봐도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달콤한 신혼의 기분을 깨는 그의 말,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체할 것 같아." 결국, 맛있게 먹으라며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낌은 결혼한 지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완화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새로 생긴 식당 덕분이었다. 동네에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샌드위치 가게가 생겼었다. 혼자 가볼 수도 있었지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재료가 두툼하게 들어가서 먹을 때 분명 질질 흘릴 것 같은데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말했다. "난 사실 저 샌드위치 가게 함께 가보고 싶은데 먹는 게 조금 낯부끄럽게 느껴져." 남편은 그래도 남자라 대찼다. "그게 뭐 어때서!" 우린 그렇게 서로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샌드위치 가게에서 마주 보고 앉아 먹었지만, 역시 난 입이 작아서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불편함이 완화된 뒤에는 야식으로 닭다리를 손에 들고 먹고 음료를 벌컥벌컥 시원하게 마셨다. 남편은 가끔 자기도 모르게 "끄억" 해놓고선 당황스러운 듯 가슴을 쿵쿵 치며 소화가 잘 안 돼서 그렇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연기력이 빵점이다. 역시 우린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한 가지가 해소되기 시작하니 어색함은 빠르게 해결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공유하며 서로 웃게 됐고,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또 컴퓨터 작업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는 엉뚱하게도 보통이라면 기억나지도 않을 만한 어렸을 적 애니메이션들을 여전히 보곤 했다. 내가 제목을 아는 것이라곤 슬램덩크와 축구왕 슛돌이뿐이다. 거기다 같은 드라마를 몇 번이고 계속 봐서 함께 보고 있지 않는 나까지 드라마 대사를 외울 정도였다. 영화는 기본 3~4회 보는 것이 평균이었고 만화책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우리 남편 오타쿠인가?' 의아함과 동시에 "당신 오타쿠야?"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술을 즐겨마시지 않고 일과 집을 반복하는 그가 대체 어떤 것에 취미가 있나 궁금했었는데 스마트폰에 비밀이 있었다니.. 나의 컴퓨터 작업은 그에게 관심을 잃기 시작했다. 초반에만 뭔지 궁금해했을 뿐, 알고 나니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 또한 그가 보는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들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같은 공간에 있고, 서로 다른 것을 하고 있었지만 아주 편안한 상태가 됐다.
난 사실 20대 시절부터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것을 하고 있더라도 함께 하는 것처럼 편안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데이트하는 것부터가 거리감이 있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외에는 흥미가 없고 낯을 가려서 이상형이 이랬던 걸지도 모른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 너무 좋아서 이상형과 관련된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고 데이트 코스가 짝짜꿍이 잘 맞아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단지 설렘 때문에 긴장감은 종종 느꼈다. 그런데 같은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색적인 일인 만큼 긴장은 고조에 달했고 마주한 현실은 막막했다. 해소되길 바랐지만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것은 은근 스트레스였다. 상대를 사랑하긴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러니.. 게다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남편도 마찬가지! 우린 서로 같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다 큰 성인들인데 어쩜 그렇게 귀여웠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함과 동시에 스트레스였지만 이런 과정은 신혼 때만 겪을 수 있는 묘미였다. 처음부터 편안했더라면 특별함은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은 서로 우리 집이 역시 최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하고자 하는 일을 각자 한다. 하지만 함께 하는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의 이상형처럼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것을 하고 있더라도 함께 하는 것처럼 편안한 사람과 살고 있는 것이다.
한 번씩 상대를 부르긴 한다. “자기, 모해?!”
메아리치듯 안방에서 컴퓨터방까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