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심은하, 한석규 주연 로맨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감상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그 당시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신인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여자최우수연기상, 대종상 각본상, 신인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 작품상, 등 여러 상을 휩쓸었던 작품이다. 한국 상업영화 최초의 재개봉작이며 한국 로맨스영화의 대표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1월 24일 개봉했으며, 2013년 11월 6일 재개봉했다.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간단한 줄거리
사진관 일을 하고 있는 정원과 주차단속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다림.
다림은 단속차량 사진 필름을 인화하기 위해 사진관에 들렸다가 정원과 인연이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정원은 시한부를 선고받은 사람이었고,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대사
아저씨, 사자자리죠? 생일이 8월 아니에요?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다고 하던데, 근데 아저씨 몇 살이에요?
완전히 아저씨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숙녀가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가야겠어요?
좋아하는 남자친구 생기면 달라질걸?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서먹하게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지원이는 내게 자신의 사진을 지워달라고 부탁했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
그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십 년 전이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옛 감성이라서 소소하게 미소를 짓게 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다림이 무거운 짐을 들고 길을 걸을 때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정원은 다림에게로 되돌아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다림이 "숙녀가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가야겠어요?"라는 멘트를 날렸는데 이 대사를 듣자 미소가 지어졌다. 이건 여자로서 할 수 있는 관심과 표현이니까. 천천히 가까워져 가는 모습에서 사랑의 순수함마저 느껴지더라. 도움 요청과 동시에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다림은 다시 한번 정원에게 호감을 느꼈을 것 같다.
정원은 시한부 선고를 슬퍼했지만 내색하지는 않는 인물이었다. 그저 그의 성격처럼 보이기도 했다. 친구 철구와 함께 술 한잔 하는 모습에서는 우리들의 인생이 보이기도 했다. "계산 맞아. 빨리 와."라는 멘트도 말이다. 이런 대사들은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정원에게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친구의 모습은 마음이 찡하기도 했고.. 둘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니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은 늙지 않고 그대로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년 전이다."... 그들의 대사처럼 세월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어릴 땐 "왕년에.."하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언제 적인데 고리타분하게 지금까지 들먹이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나이 든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세월은 너무 빨라서 그게 정말 엊그제처럼 느껴지며, 조금 더 인생을 경험해 봐서 상황 대처 능력이 좋아짐에 따라 차분하거나 어른스러워 보일 수는 있지만 행동이 달라졌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은 것은 아니다. 친구와 얼마 전 나눈 대화에서 친구가 나에게 "50대가 돼도 똑같을 것 같아."하고 말했는데 내 생각도 그렇다. 그래도 인생의 깨달음과 경험에 따라 나이 들수록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고 모시고 나들이를 가려고 하고, 부모님과 외식을 하게 되고 그런가 보다.
영정사진을 다시 찍으러 온 할머니의 모습에서 옛 시대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정원에게 "돈은 안 받는 거지?"하고 질문했었는데, 정원은 웃으며 당연하다고 답한다. 요즘 말로는 진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전에는 그것이 정이었다. 다시 옛정을 느끼니 마음이 따뜻해지더라. 그때 당시 길거리에서 흔히 보았던 스타일의 간판을 영화에서 볼 수 있어 반갑기도 했고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와 항아리 풍경을 보니 어릴 적 시절이 떠올랐다.
정원은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찍기도 하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사랑뿐 아니라 인생과 죽음을 다뤘다는 것에서 인상 깊었다.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정원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이 아프기도 했다. 자식은 부모에게 무엇을 알려줄 때 왜 이것도 못 하느냐며 답답해하기도 하지만, 나이 들면서 사람은 스스로 알게 된다. 마음은 늙지 않아도 몸과 머리가 느려져 간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스스로 인지한다는 것은 심정이 복잡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드릴 땐 차분하게 반복적으로 친절하게 알려드리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너무 어린 나이일 경우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아서 모른다. 여기서 정원은 어린 나이에 해당되진 않는다. 30대의 인물이었고 자신은 곧 죽을 거니깐, 그전에 아버지께서 빨리 터득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을 것 같다. 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내버린 것 같다. 원래 평소에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그런 인물이 아닐 듯..
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고 있는 정원과 그런 정원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무겁더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당사자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지만,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 또한 헤아릴 수 없다. 정신적 고통을 나누지 않고 홀로 감내하려는 모습을 보니 정원은 효자였나 보다. 아버지의 모습과 판박이다. 그는 잘 웃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남에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건넨 것처럼..
정원이 입원하게 되고 다림이 파견 근무를 가게 되면서 둘은 엇갈리게 되었지만, 인연의 끝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그녀는 사진관을 지나쳐 가다가 자신의 사진이 걸린 것을 보곤 웃음을 짓고 발길을 돌린다. 그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그녀에게 아픔을 주지 않고 떠난 그의 모습이 기억에 더 남았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초원 사진관은 군산에 가면 볼 수 있다. 군산 여행.. 볼 것도 많고 먹거리도 많고 재밌었는데 다시 가고 싶다. 그리고 아름다운 작품을 보니 오랜만에 힐링도 되고 좋았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여러 번 봐도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포스터까지 감성적이며 너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