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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진 Aug 23. 2021

나였던 수많은 과거에게 안녕을

 '이 또한 다 지나갈 거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힘들어하는 순간에 가장 하기 쉬운 위로 중 하나인 이 말. 지금의 힘듦이 언젠가는 끝이 날 거야. 하지만 뭐 어쩌라고. 결국 내가 걱정하는 건 현재의 나지 미래의 내가 아닌데. 이런 생각으로 이 말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 좋아했던 아이돌의 앨범들이 자리를 너무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몇 년 동안 정말 좋아했고, 티켓팅을 위해 애쓰고 앨범과 공식으로 발매되는 굿즈들을 사려고 노력했었다. 그뿐인가. 팬들이 준비한 카페와 전시회 등을 가기는 또 얼마나 많이 갔는지. 그 흔적들이 한가득했다. 훈장 같던 것들이 이젠 처치 곤란이 되었다.(이 글을 볼 확률은 낮지만 내게 끌려 강제 덕질 투어 했던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한 달 전에는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 처음엔 당황했으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느꼈다. 정말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손을 놓았고 그래서 막판에는 포기했던 것 같다. 포기를 했던 그 순간에도 그 사건들은 두고두고 내게 남아 상처가 되거나, ‘이보다 더 큰 일은 없다’라는 훈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왜 그때 그렇게까지 걱정했나 싶기도 하다. 



 모든 일들이 같은 무게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일들은 오래도록 현재에 남아 나를 괴롭히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들이 생명력을 길게 지니진 않는다. 대개는 순간에만 강력한 힘을 갖고 소멸하곤 한다.


 누군가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설렘, 다 놓아버리고 싶던 힘듦 등은 감정으로는 존재하지만, 그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은 나중에 보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대체 왜 그렇게 맹목적이었고 그렇게나 걱정에 사무쳤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그는 그렇게도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현재가 너무 소중해서 과거의 것은 그저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가. 과거는 이미 우리의 손아귀를 벗어났고 미래는 불분명하니 현재의 나에게 쏟는 애정에만 집중한다. 


 혹자는 현재에 힘을 쏟아, 결국 더 괜찮았던 과거를 만드는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 말에 백 번 동의하지만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에게 밀려 '이미 지나간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어느순간부터 마음에 걸렸다.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이 말이 싫은 것에 하나의 이유가 더 붙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중요하지 않게 여겨서가 아닐까. '그땐 왜 그랬을까'라는 가벼운 회상으로 지나갔던 과거의 나에게 안녕을 고하고 싶다.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언젠가는 현재를 살았던 그때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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