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지혜 Sep 03. 2021

유리고양이를 위한 츄르 만들기 : 실망

우울증에 빠진 네 곁을 지키는 법

  나의 고양이가 아프기 시작한 건 3년 전 여름,

  극장이었어. 친구가 선물해준 티켓으로 고급 영화관을 찾았지. 전좌석 리클라이너에, 언제든 직원을 호출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최고급 영화관이었어. 근사하게 웰컴 드링크도 마시고 내어주는 다과도 먹었지. 연차까지 내고 야심 차게 갔던 데이트라 평일 낮이었거든? 심지어 우리 말곤 아무도 없는 거야! <토이스토리 4>를 그 멋진 영화관에서 고양이랑 떠들면서 봤다니까?


  리클라이너를 뒤로 젖혔어. 다리도 편안하게 들어 올리고 거의 누워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양이가 가슴을 부여잡는 거야. 그 편한 리클라이너도 다시 꼿꼿이 세우고 영화에도 집중하지 못했지. 고양이는 괜찮다고 손사래 쳤지만 힘들어 보였어. 어울리지 않게 편안한 의자에 앉아 거듭 물었지. 나갈까? 괜찮니? 안 되겠다, 나가자. 고양인 파래진 얼굴로 끝까지 버텼어. 영화는 감동적이었고 재미있었어. 손 닿을 거리에 앉아서 괴로움을 삼키는 고양이를 두고, 어둠 속에서 나는 영화를 봤어. 처음에나 좀 신경이 쓰였지 잊어지더라. 알록달록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예쁘고, 내용도 좋고, 음악도 좋더라고.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상영관을 벗어났어. 건물 밖으로 아예 뛰쳐나가서 고양이는 한동안 숨을 골랐지. 나는 아무 소리 못하고 고양이 곁을 맴맴 돌았어. 상태가 안 좋을 때 함부로 건들었다간 부스럼이 날 수 있으니까. 얌전히 기다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어. 서성이면서 한참 살폈던 것 같아. 쪼그려 앉아 바닥만 보던 고양이는 한참 만에야 입을 떼었어.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갑자기 죽을 것 같았어."

  그래, 공황이더라.


  그 후로 우리는 영화관에 잘 가지 않게 되었어. 수년간 나눈 취미였는데,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된 거야. 한 번 터진 문제는 생각보다 자주, 여기저기서 터졌어. 비행기 공포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 버스, 승용차 따위도 어려워졌지. 인파나 소음도 쥐약이었어. 어떤 자극도 없는 지극히 익숙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 먼 곳까지 가는 건 언감생심,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말이야.


  처음엔 그저 어떡하면 증상이 나아질까만 고민했던 것 같아. 사람이란 게 말이야, 시간이 지나면 욕심이 다시 고갤 들고 자기 연민이 생긴다? 어느 날 문득 서글프더라고. 영화관도 못가, 여행도 못해, 유명한 맛집은커녕 집을 나서는 것도 어려운데 데이트가 다 뭐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었어.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해도 IPTV에 뜨길 기다려야 했지. 남들 다 하는 기본적인 여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까 서럽더라고.


  근데 있잖아. 우리 고양이도 영화관을 참 좋아해. IMAX관에서 스케일 큰 마블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 비행기도, 버스도 타는 걸 힘들어하지만 누구보다 여행을 좋아해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좋아하고 말이야. 그러니 오죽했겠니? 내가 느끼는 답답함 이상으로 힘들었을 거야. 버겁고 두렵고 미웠겠지. 그런데 나는 그 옆에서 고작 데이트 걱정이나 하고 있었어. 내 행복이 반토막 난 것 같아서 서러웠어. 당장 생활이 위태로워진 고양이의 처연한 유리가슴은 나몰라라 한 채로.


  다행히 고양이는 아주 가끔이지만 영화관에 가게 되었어. 필요하면 버스도 타고, 사람 많은 곳도 견디게 되었지.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유리가슴을 못 본 척하고 싶을 때가 생기는 거야. 하울링을 이해할 수 없고, 지난한 과정이 버겁더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어. 말이 되니? 벼랑 끝에 서있는 저 고양이를 사랑한다면서, 살려달라고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귀를 틀어막고 싶다는 게?

 

  지쳤던 것 같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지 답이 없으니까. 3개월이면 3개월, 1년이면 1년. 누가 딱 정해주면 미리 체력을 안배할 텐데, 도무지 끝을 모르니까 너무 캄캄한 거야. 왜, 같은 길도 초행길이면 더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잖아. 딱 그 짝이야.


  먼저 그 과정을 겪어본 집사로서 이야기해줄게. 괜찮아져. 걱정 마. 물론 고양이마다 케이스가 다르고, 편차가 있겠지만 언젠가는 나아져. 꼬박꼬박 약을 먹고 집사와 자주 껴안는다는 전제가 있지만. 고양이가 극복했기 때문만은 아니야. 집사도 무언가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봐. 집사의 마음에도 굳은살이 배기고, 어느 정도 적응을 하지. 고양이는 점차 괜찮아져서 덜 보채게 되고. 그렇게 중간에서 만나는 것 같아. 그러면 마침내 다시 영화관에 갈 수 있게 되는 거고.


  집사도 사람이잖아. 얼마든지 휘청일 수 있어. 대신 그럴 때마다 이걸 떠올려봐.

  내가 도대체 얼마나 고양이를 사랑하는지.

  나는 있잖아, 맹세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 비록 고양이가 조금 특별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했다고 생각해. 다른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면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난 아니야. 요녀석이 아니면 안 돼, 나는.


  힘들수록 고양이 옆에 누워보자. 쓰다듬는 손길에도 하악질을 할지 몰라. 그러면 상처 받는 대신, 손을 거두어 주는 거야. 쓰다듬는 대신 가볍게 몸을 붙여보자. 몸 어디든 살짝만 닿아 있어도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잖아. 그걸로 고양이도 알아챌 거야.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집사가 날 보듬어 주는구나." 그리고 집사도 안도하겠지. "우리 고양이가 내 곁에 있구나."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이 아니란 것만 명심해. 아무것도 당연한 건 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한 번 봐. 얼마나 감사할 일 투성이겠어?


  날이 많이 선선해졌네. 고양이들 감기 조심하고, 마음 감기도 조심하고. 걸렸다면 밥 잘 먹고 푹 자자. 쥐돌이 쫓아다니느라 진 빼지 말고.

  알았지? 그럼, 건강하게 또 만나!

매거진의 이전글 유리고양이를위한 츄르 만들기 : 상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