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 성추행 혐의(gross indecency)로 감옥에 수감되어있을 동안에 그의 연인이었던 더글라스(Douglas)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연애편지를 묶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옥에서 할 수 있었던 게 생각하는 것과 (허락된 몇 권의 책을) 읽는 것, 편지를 쓰는 것(창작물은 쓸 수 없었다고 한다)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더글라스에 대한 애절한 감정 외에도 오스카 와일드의 삶, 예술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꾸밈없이 드러난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가장 큰 변환점 중 하나라고 말했던 수감생활로 인해 오스카 와일드의 삶과 예술세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먼저, 쾌락을 중시하던 심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견디기 힘든 수감생활을 하며 ‘슬픔(Sorrow)’의 의미를 찾게 된다.
I now see that sorrow, being the supreme emotion, is at once the type and test of all great art.
— 심연으로부터 中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방식인데, 초기의 편지들에서는 더글라스를 원망하고 자신의 과오를 탓하지만 나중의 편지들에서는 자신의 과거와 수감생활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경험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야.
자신의 경험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입술에 거짓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 심연으로부터 中
슬픔과 기쁨, 고통과 행복이 공존하는 삶의 역설적 모습을 받아들이는 오스카 와일드의 모습이 편지 곳곳에 드러난다.
오스카 와일드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결국 더글라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그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사람들의 비난속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단 하나의 작품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수감생활 중 만난 사형수의 사연을 소재로 한 'The Ballad Of Reading Gaol(레딩 감옥에서의 노래)'이다. 대다수의 평론가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 자신조차도 마지막 부분이 시의 완성도를 떨어트린다고 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와일드가 쓴 마지막 부분은 레딩 감옥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묘사였다. 작품에 의도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면 안된다고 강력하게 말하던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더라도 열악한 감옥의 현실을 고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 시로 인해 영국의 감옥환경은 개선되었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내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불구가 되거나 망가지거나 불완전한 존재로 남게 되지만 않는다면-내게 일어난 모든 것을 나의 기질 속으로 빨아들여 그것이 나의 일부가 되게 하고, 아무런 불평이나 두려움이나 저항감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거야.
— 심연으로부터 中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떳떳하게 받아들이려는 의지와 본인의 예술관을 바꿔서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마지막 모습은 젊은 시절의 화려한 모습보다 오스카 와일드를 더 가치 있는 예술가로 만들어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