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세계소리축제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여러모로 나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데, 3년 동안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내가 문화예술을 즐기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우리나라의 전통음악과 여러 나라의 민속음악을 주로 선보이는데, 마이너한 장르를 선보이는 지역예술축제가 20년째 맥을 이어왔다는 것이 짠하기도, 자랑스럽기도 하다. 문화예술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방에서 이토록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올해도 두 개의 공연을 예매했다.
첫 번째로 본 공연은 <광대의 노래 ‘사금(四金)’>이라는 공연이었는데, 우리나라 농악 상쇠(꽹과리) 명인 4인(임광식, 류명철, 유지화, 손영만)과 그 제자들이 각 지역에 전승되어 온 농악을 연주하는 작품이었다. 사실 프로그램 북도 보지 않고, ‘명인’이라는 단어에 꽂혀 예매하고 큰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정말 무지막지하게 훌륭한 공연이었다. 같은 농악이라는 장르 안에서 각 지역마다 개성 있는 가락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복장이나 악기를 매는 법 등이 다양한 것도 재미있었다.
명인들이 즉흥적으로 합주를 하면서 공연이 시작되었고, 차례대로 각 지역의 가락들을 보여주었다. 남원농악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류명철 상쇠의 농악은 중간중간 노래가 섞여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친근하고 모두가 함께하는 농악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공연이었고, 남사당 상쇠를 지낸 임광식 명인의 농악은 화려한 꽹과리와 장구의 가락이 돋보였다. 김천 금릉빗내농악으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손영만 명인의 농악은 제일 독특한 형태였는데, 꽹과리채의 모양도 유일하게 달랐고, 큰 북을 양손으로 치는 파워풀한 대북놀음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공연자는 호남우도정읍농악으로 전북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유지화 명인이었다. 유일한 여성이자 정말 작은 체구의 명인이었는데 존재감만으로 다른 연주자들과 관객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대단했고, 어떻게 그런 카랑카랑한 꽹과리 소리를 내시는지, 정말 놀라웠다.
공연 내내 박수를 쳤는데 아픈지도 모를 만큼 신나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어떤 예술가는 존재 자체로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인데, 특히 긴 세월 동안 한 가지 예술활동을 이어나간 명인(master)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예술활동을 평가하는 걸 내려두고 그냥 감상하게 만든다. 이 공연이 나에게는 그런 작품이었다. 또 한 가지 좋았던 것은 관객들의 반응이었는데, 전공자들이나 농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공연 내내 호응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전통음악은 중간에 ‘얼씨구’ ‘절씨구’ ‘좋다’가 들어가야 제맛인데, 정말 제맛인 공연이었다. 그 덕에 나도 신나게 소리 지르며 볼 수 있었고. 연주자와 관객들 모두 행복함이 느껴지는 공연이었고, 제발 한 번만 더 볼 수 있길 바라면서 공연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