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취향의 배경에는 이야기가 있다.
#1. 취향 없는 남자는 사랑에 빠져 취향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데.
취향 없는 무채색의 남자가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카스텔라는 취향도 의지도 없이 아내와 부하직원이 권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딱히 그들의 조언이 좋다기보다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만사가 귀찮은 그는 어느 날 아내에게 이끌려 조카의 연극 공연을 보러 가는데, 연극에 출연한 여배우 클라라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알고 보니 클라라는 부업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였고, 카스텔라의 부하직원이 카스텔라의 영어공부를 위해 고용했던 사람이었다. 첫눈에 반한 클라라가 본인의 개인 영어 강사라는 걸 알게 된 카스텔라는 그날 이후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그녀 주변의 예술가들을 따라다니며 예술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카스텔라가 취향을 갖게 되는 과정은 힘겹기만 하다. 클라라의 주변 예술가들은 예술적 경험과 지식이 없는 카스텔라를 무시하고 카스텔라가 잘 모르는 이야기만 하며 그를 비웃는다. 클라라는 카스텔라를 무시하는 친구들을 만류하지만 사실 그녀는 카스텔라의 취향을 무시하고 심지어 경멸하는 사람이다. 카스텔라가 전시회에 가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자 클라라는 카스텔라가 본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림을 구입했다고 생각한다. 클라라에게 카스텔라는 그림을 고를만한 예술적 취향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카스텔라는 영어로 시를 적어 클라라에게 마음을 전하지만 결국 클라라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한다. 상처 받은 카스텔라는 더 이상 클라라와의 영어수업도 하지 않고, 클라라와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카스텔라는 사무실 인테리어를 직접 고를 만큼 본인의 취향을 갖게 되었고, 집에 걸어놓은 그림을 떼 버린 아내에게 화를 내며 본인의 취향을 고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클라라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카스텔라를 생각하며 어쩐지 공허하고 우울해한다. 새로운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 클라라의 친구는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어’라고 말한다. 클라라는 본인의 공연에 카스텔라를 초대하고, 그가 관중석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울한 기분으로 공연을 마친다. 커튼콜을 할 때 몇 번이나 관중석을 확인한 클라라는 마침내 나타난 카스텔라를 보고 지금껏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환한 미소를 보인다.
이 영화는 취향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랑 같은 취향을 갖고 있다면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취향이 다르다는 건 사랑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취향이 다르면 어떤가, 내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 한 사랑은 모든 걸 이겨낸다.
#2. ‘취향 존중’은 의무교육과정에 넣어야 합니다.
카스텔라의 아내인 안젤리크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는 카스텔라의 여동생 집의 인테리어를 해주며 본인 취향을 고집하는데, 녹색으로 벽지를 하고 싶다는 여동생의 말에 안젤리크는 이렇게 말한다.
“녹색은 너무 차갑고 딱딱해요. 따뜻하고 포근한 게 좋아요. 분홍색이나… 꽃무늬 같은 거요.”
녹색이 왜 차갑고 딱딱하지? 녹색은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색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안정감을 주는 색일 수 있다. 또, 같은 녹색이라고 해도 따뜻한 톤과 차가운 톤이 있는데! 취향이 없는 사람은 매력이 없지만, 본인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은 재수가 없다.
카스텔라가 전시회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구입해 거실에 걸어두지만, 안젤리크의 취향인 분홍색과 꽃무늬 인테리어 컨셉과 맞지 않는 그림은 바로 안젤리크에 의해 없어지고 만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안젤리크는 본인이 얼마나 자기 취향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카스텔라의 여동생 집을 방문한 안젤리크는 분홍색 꽃무늬 벽지를 떼고 다시 인테리어를 한 여동생에게 교과서에 나와야 하는 대사를 읊는다.
“다 바꿨네요? 이것도 좋네요”
#3. 취향도 갈고닦는 거죠
영화 중간중간에 카스텔라의 경호원이 플룻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취미인 건 알겠는데, 너무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난다. 이게 될까?
영화 후반부에 어설프지만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과 합주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의 행복함이 느껴졌다.
우연히 얻어걸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많은 경험을 한 후에 켜켜이 쌓이는 게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해보지 않으면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본인의 취향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취향의 배경에는 이야기가 있다. 카스텔라의 취향의 배경에는 클라라가 있는 것처럼.
여담으로 극 중 바텐더 매니 역할을 맡은 배우가 감독이었고, 카스텔라를 연기한 배우가 각본을 맡았는데, 두 배우가 연인관계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영화의 세계…
오랜만에 아주 재밌게 본 프랑스 영화였다. 대사가 많지만 따라가기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뻘하게 터지게 되는 장면들도 많았다. 프랑스 영화가 어렵거나 프랑스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프랑스 영화를 볼 때 불륜이나 바람 이런 것들은 그냥 못 본 걸로 하시는 게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사진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