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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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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Oct 09. 2021

결 에게 #1

 안녕. 은유가 다분하지만 그런대로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이 이야기는 곧 ‘나’이자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 아주 솔직한 나의 이야기야. 이야기의 주체는 ‘나’이지만 당신도 어쩌면 곧 ‘나’인 주체이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늘어놓아도 괜찮겠지?

 아, 그리고 결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거든. 이 말은 곧 나를 그리고 너를 우리를 가장 좋아한다는 말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알았지, 결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가장 좋아할 나의 결아.


 결아. 요즘 너의 밤은 어때? 잠에 들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잠에 들고 있어? 부디 꼭 그랬으면 좋겠는데..


 나는 요즘 악몽을 자주 꿔. 더운 기온 탓인지, 신경 쓸게 많아서 그런지 자주 잠을 설쳐. 그런 날들이 많아지니까 이런 생각을 해. 나의 보통의 수면은 사람들과 정반대인 것 같다는 생각을. 숙면 보다 악몽을 더 자주 꾸어서 평탄하게 잠에 드는 날에 손가락을 접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악몽을 꾸었던 날들을 손가락 접어 새는 것처럼.


 악몽은 악몽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악몽을 꾸던 날에도 후유증이 심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최근 내 악몽에 사랑하는 지인들이 나와. 그들이 나와선 내게 안 좋은 말들을 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입에서 모진 말들이 나오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마음이 아파와.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을 흘리고 있어. 그래서 나의 아침은 소란스러워. 자주 울면서 깨거나 중얼거리면서 일어나.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애를 쓰면서 깨는 일이 많아지니까 자주 지쳐버리곤 해.


 우울한 거 아니냐고? 아니. 정말 아니.

내가 이리도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요즘의 나는 우울하지 않아. 정말 괜찮아. 나의 마음이 정말 많이 단단해진 것을 느끼는 요즘이야. 눈물이 많이 사그라들었어. 아마 펑펑 울었을 것 같은 일에도 도통 눈물이 나지 않아.


 결아, 놀랍지 않니? 내가 이렇게 단단해진 것이. 요즘 들어 이런 내가 정말 좋아.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너는 내가 괜찮아 보여서 더 위태로워 보인다고, 너무 단단해 보여서 깨질까 두렵다고 말하겠지. 네가 그렇다 하면 나는 그럼 또 그런대로 괜찮다고 말할 거야.


 위태로우면 위태로운 대로, 깨지면 깨지는 대로. ‘위태로우면 잠시 내려놓으면 되고, 깨지면 다시 만들지 뭐.’ 요즘은 이런 마음이야. 이전보다는 수월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 다시 한다면 된다는 생각은 꽤 도움이 되더라고. 다음과 다시는 없다고 생각해서 자주 애가 탔고, 각박했고, 불행했고, 안타까웠거든 나 자신이. 근데 다음은 있고, 다시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층 여유로워진 것을 느껴.


 결아, 요즘 날이 무척 더워. 내가 태양이 되어선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아. 너의 여름은 어때. 너무 더워서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몸도 마음도.


 근데 참 이상하게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간간이 겨울의 서늘한 공기가 나를 스쳐가. 너무 낮은 온도에 화상을 입는 것처럼 역설적인 하루가 빈번해. 그런 때면 애써 웃어넘기고 싶어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네.’라며 재치 있게 넘기려 하는 것 같아. 어때? 제법 귀엽고 괜찮은 방법 같지 않아? 너도 그런 기분이 든다면 한 번쯤 써먹어봐. 나름 웃음 지으며 차가운 마음을 흘릴 수 있을 거야. 또 그러길 바라고.


 결아, 너의 이름을 빌려하고픈 말이 정말 많아. 근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덮어두려고. 너를 떠난다는 게 아냐. 나는 너이고 너는 나니까. 우리는 언제든 함께인 거고 함께 일 거야.


 내가 이 이야기를 모두 하는 날에도 여전히 매미소리가 요란스럽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빙수가 먹고픈 여름 일지. 아니면 바싹 마른 낙엽을 신나게 밟고, 쿰쿰한 은행 냄새가 풍기는 가을 일지. 서늘한 공기에 목에는 잔뜩 오돌 토돌 하게 올라오도록 소름이 돋고, 콧잔등과 손끝이 붉어지는 얼얼한 겨울 일지. 생명들이 꿈틀거리며 벚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봄일지. 아니 어쩌면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잘 지내고 있어야 해, 결아.

 내 이야기를 또 들어줘. 그리고 들려줘.

그럼, 안녕.

나의 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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