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실의 시대
결아, 안녕. 너의 이름을 빌려서 나의 이야기를 하러 왔어.
지금 여기는 2021년이야. 우리는 혐오와 상실, 그리고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과 살인, 사기와 같은 단어들만 봐도 섬찟한 사건들로 각종 뉴스 메인이 도배되고 똑같은 사람인데 염색체가 다르다는 이유들을 기반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회야. 그리고 많은 청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2021년이야. 거기에 속력을 부추기는 코로나 블루까지. 이거야말로 지구 종말이 아닐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서로를 밟고 올라가기 바쁘고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들로 점철되는 사회의 모습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점점 동물의 모습을 하고 숨겨왔던 이빨을 드러내는 것처럼 숨겨왔던 그들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해. 날카로운 이빨에 제 꿈도 펼쳐보지 못한 여린 영혼들은 제풀에 꺾여서 쉽게 스러지고 있어.
무망감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보여.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 '무력감’과는 다른 무력감을 뛰어넘는 우울. 자신이 처한 상황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 노력과 의지에도 앞으로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좌절감에서 기인하는 마음.
아무런 의지도, 의미도 없으며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마저 사라지는 마음을. 어쩌면 나도 겪었던 아픈 마음.
결아, 나도 아마 그랬던 것 같아. 이 삶이 지긋지긋하다 느꼈을 때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당장에 먹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없고 욕구의 존재 자체를 상실했었거든. 힘듦을 넘어서서 발버둥 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으며 모든 것이 다 그대로인 것만 같은 그런 무력감을 뛰어넘는 무망감을 말이야.
하지만 나는 절대 죽을 수 없었어. 죽지 못했어. 죽음이 괴롭다는 것을 알았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알았고 그 괴로움을 견딜 용기는 없어서 나는 차마 죽을 수 없었어. 어쩌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어렸을 적에 몸도 마음도 아파서, 정말 많이 아파서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서 되려 난 살았어.
살아갈 수 있어 지금을.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자꾸만 이 삶에 의미를 새긴 것 같아. 그것이 글이든 영상이든 사진이든 꾸준히 기록해 왔거든. 이 글이, 이 영상이 내 마지막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새로운 유서를 갱신한다는 기분으로 기록했어. 최대한 이 세상에 바라는 게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하루 이틀 글이 쌓이고, 사진이 쌓이고, 그러다 보니 나의 흔적들을 봐주고 자신의 이야기까지 손수 남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생겼어. 이것들을 놔두고 죽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 언젠가 책도 출간하고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과 더 열심히 소통하고 싶은 목표도 생긴 거야, 내가 바라는 게 생겨버린 거야. 그때부터 나는 삶을 져버릴 수 없어서 다시 이 각박한 세상에 몸을 던졌고, 하고 싶은 게 생겨서 그때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렸어.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다시 발버둥 치며 헤엄을 쳐온 것 같아.
나의 기록은 어쩌면 살기 위한 거침없는 발버둥이었어. 내가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 사진을 찍는 것, 영상을 만드는 것. 이 삶에 지독히도 나라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말없이 사람들 틈에서 사라지고 싶다가도 나의 흔적을 진득이 남겨서 모두의 기억 속에 남고 싶어. 여전히 그래.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어. 나의 글, 나의 사진, 나의 영상들을 봐주는 이들이 없다면 나는 아마 쓰지도 찍지도 기록하지도 않겠지. 오히려 허망감에 빠져 다른 것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의 흔적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도 누군가가 나를 열심히 읽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도 이런 나를 알아서 열심히 상대를, 내게 찾아와 주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하는 것 같아. 혹여나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그럼 내가 진득하게 읽어서 그 사람에게 작은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결아? 내가 누군가의 삶에 작은 의미가 되어 그 사람이 자신의 넓은 바다를 이룰 수 있으면 참 좋겠어. 누군가의 우주에 작은 별 하나 정도도 참 좋을 것 같아. 이름이 없는 소행성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