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
새벽내내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언제부터 저렇게 살아왔을까, 그때도? 설마 그때도 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고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 이혼을 한다면, 아이들은 어떡하지, 혹은 용서하고 산다면? 혹은..내가 죽는다면..뭐 이런 끝도 없는 생각이 밀려와 뒤척뒤척 거리다가 눈물도 흘렀다. 남편은 항상 내가 아이들을 재울때 새벽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그날 그가 술을 마셨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마셨던 것 같다. 새벽 무렵 얘기를 나눌까 하다가 당장은 어떤 말도 할 자신이 없어서 닫힌 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거실의 불빛을 보며 생각했었다.
'미친놈'
저 미친놈. 남편이 성매매에 사용한 돈은 시어머니가 며칠 전 빌려줬던 2천만원 이었다. 그 2천만원을 빌릴때 그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앉혀놓고 죽는 시늉을 했다. '아이 둘을 키우기 힘들다. 집도 월세로 이사와 앞으로가 무섭다. 밀려오는 카드값이 두렵다.' 그 옆에 죄인처럼 쪼그려 앉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저새끼는 그 돈을 그렇게 썼다. 아마 그 돈 뿐만이 아니었겠지. 남편은 종종 시댁에 돈을 빌렸는데 그때마다 귀가가 항상 늦었다. 아니지, 그냥 돈만 있으면 늦게 들어왔다. 우리가 왜 이렇게 돈에 쪼들려 살아왔는지, 생활비를 단 한번도 받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건지, 왜 항상 돈이 없는지..그때가 되서야 알게 되었다. 미친놈 때문이었다.
남편의 통장잔고는 그 2천만원은 어디갔는지 단 40몇 만원으로 줄어있었다.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다.
그리고 결국 새벽 4시쯤, 결심했다. 이혼을 하기로.
'어?근데 만약 안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남편과 8년을 살며 어떻게 단 한번을 이혼 생각을 안했겠는가? 그때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남들도 다! 이러고 살아! 참아! 참고 사는거야! 넌 왜 못해?"
아니다. 남들은 이렇게 살지 않는다. 뭐 몇몇은 이렇게 살겠지만 적어도 그의 말처럼 전부 다! 유흥비로 2천만원을 날리며 살진 않겠지. 성매매까지 하면서 말이다.
'안해준다고 하면 소송을 하자.'
생각이 들자마자 핸드폰을 켰고 이혼 소송을 검색했다. 초록창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누르자마자 법무법인이 주르륵 떴다. 지도에 들어가 '거리순'으로 정리한 그 목록에서 가깝고, 커보이며, 믿음직스러워 보이고, 최대한 비싸보이는 곳을 찾아봤다. 네이버 예약으로 변호사와 1:1 상담도 예약할 수 있는 그 곳을, 충동적으로 새벽 4시에 방문 예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