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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Jul 24. 2022

여행 전 마음의 부담은 여행 후 사라졌다.

포틀랜드 여행 1

돈, 시간과 체력까지 요하는 여행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하려는 걸까, 여행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나는 일탈, 탈출, 보너스, 선물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여행 후에 가지고 돌아오는 마음속의 감동이나 아이디어나 영감까지는 생각해 내지 못한 단지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를 두고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이번 여행은 감동과 영감까지 기념품으로 가지고 돌아오기 위해서 뭔가 특별한 시도를 해보리라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조용했던 한의원은 나의 여행 경비에 제동을 걸었는데, 여행하는 동안 의미 있는 곳에만 돈을 쓰기로 했고, 장기간 비우기 힘든 한의원은 여름휴가를 끼워 넣어 환자들에게  휴가처럼 보일 수 있도록 위장 계획을 세웠다. 여름휴가와 대진 원장님을 4일간 두기로 한 포틀랜드 여행기간은 열흘로 잡았다. 문제는 장거리 비행 후 국내선으로 다시 갈아탸야하는 여정으로 탈진할 수 있는 나의 체력이 문제인데, 시애틀 공항에 딸이 나를 픽업하는 걸로 해결을 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 한의원과 반려견 순이 돌봄을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다 짜 내고 나니  벗어나고픈 일상에서 탈출할 D-Day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걱정거리들을 해결한 후에는 한의원을 한 이후 처음으로 길게 떠나는 열흘간의 여행을 의미 있게 보낼 생각에 읽을 책들과 노트북을 챙기고 짐을 꾸렸다.




딸의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white coat ceremony)에 참석하기 위해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7월 2일 토요일 오전 11시에 시애틀에 도착했다. 시애틀에서 포틀랜드까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지만 11시간 장거리 비행 후 미국 국내선을 다시 타는 건 나에겐 무리라 여겨져 딸이 시애틀까지 마중을 나왔다. 딸의 얼굴을 몇 시간 더 일찍 볼 수 있어 좋았고, 편하게 차를 타고 갈 수 있어 나의 몸도 만족해했다.


시애틀까지 와서 공항 구경만 하고 갈 수가 없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에 들러 점심도 먹고 활기찬 사람들과 시장의 모습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작년에도 와 봤던 스타벅스 일호점은 이번에는 패스하기로 했다. 구멍가게 크기의 스타벅스 일호점을 찾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몇 명씩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래서 들어가기 위한 긴 줄 곳곳에 다른 가게들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안내문이 써 붙어 있었다. 세계 어딜 가서도 스타벅스에 찾아가면 내가 마시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믿음이 이곳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클램 차우더 수프와 랍스터 롤로 유명하다는 식당에도 이미 긴 줄이 있었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서 있는 긴 줄은 피곤함을 이유로  줄 서기를 포기하면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다시는  못 올 것 같아 줄을 서기로 했다. 생각보다 줄이 쑥쑥 잘 줄어들었다. 현금만 받는다는 그 식당은 잘 갖춰진 테이블이나 반짝반짝한 식기와 수저가 세팅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종이 용기에 수프를 담아주고 일회용 포크와 숟가락, 나이프를 주었으며 빈자리에 가서 합석해서 먹어야 했다.


속초 중앙 시장에서 메밀 전병과 오징어순대를 사 먹는 것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은 편하고 소박하지만 그곳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해 낸 수프와 랍스터 롤은 줄을 서서 먹은 보람이 있었다. 앉아서 먹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줄 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다 먹고 난 후 아쉬움에 잠시라도 더 앉아 있다간 긴 줄에 지쳐 있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이 뻔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식은 진저비어로 하자고 식당에서 나오는 골목 입구에 진저비어(ginger beer)를 파는 곳을 찜해 놓았었다. 무알코올인 진저비어를 파는 곳에는 여러 가지 맛을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알코올이 약간 들어간 복숭아 맛을 골랐다. 얼음을 넣어 시원해 보이는 밀봉된 뚜껑을 얼른 맛보고 싶어 급하게 열었더니 가게 직원이 웃으면서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는 걸어갈 때 마시면 안 되며 뚜껑을 열면 안 된다고 한다. 이건 무슨 논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가게 안에서 알코올이 들어간 진저비어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도 어차피 다 걸을 텐데. 여행지에서의 색다른 경험이라 그런지 이런 상황까지도 재밌게 다가왔다.


그렇게 웃으면서 우리는 차로 돌아가 나는 시원한 복숭아 맛에 알코올을 첨가한 진저비어를, 딸은 무알코올 진저비어를 마시면서 3시간 거리의 포틀랜드로 향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에 시애틀에 도착해 걷고 떠들며 웃고 먹고 마신 후 차를 탔더니 졸음이 몰려왔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녔다는 생각에 포틀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다 못 잔 새벽잠을 보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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