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1. 나는 왜 글을 쓰려 하는가.
부제 2.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일상이 괴롭습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을 읽었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어릴 때부터 친구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애인으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나 지적을 무수히 들어왔지만, 순순히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이 많은 게 아니야. 이 정도 생각은 다들 하고 사는걸...' '다들 이 정도의 생각'을 하며 사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밥벌이를 하며 그나마 여러 사람들을 겪어 와서 인지,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인지 내 '예민함'에 대한 메타인지는 그렇지 않아도 점차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순간은 내 '예민함'과 '생각 많음'에 대한 메타인지가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그래서 과학 수업이 재미있었다. 획일화되어 있고 사람의 개입에 의해 바뀌지 않는 규칙과 진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수학 공부를 좋아했다. 비슷한 이유로 규칙과 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운이 너무나도 좋게도 공부를 곧잘 하곤 했다. 지는 걸 싫어하는 성정 탓인지, 한 번 시작한 걸 놓기 싫어하는 고집 탓인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던 탓에 '노는 것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해서인지... 아무튼 그랬다. 원하던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인기있는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과 공부의 대부분은 적성과 맞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지는 걸 싫어하는 성정 탓인지, 한 번 시작한 걸 놓기 싫어하는 고집 탓인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여전히 관심이 없던 탓인지... 공부 잘 하는 친구를 만난 덕분인지... 그럭저럭 잘 해내고 졸업했다.
일을 시작한 뒤, 내 시간과 노력을 쓰는 댓가로 돈과 보람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 피로가 쌓여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와 진리의 신기함에 비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일상의 지난함과 사람들의 가변적임은 늘 나를 괴롭혔다. 사실 가장 나를 괴롭히는 건 어떤 이벤트이든, 누군가의 어떤 말이든 그저 쉽게 지나가게 두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나 자신의 습성이었으리라.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게 나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만 30년이 넘게 '나'로서 살았는데, 그걸 이제야 깨닫고 인정하다니... 나 스스로도 놀랍다.
아 그래서 이제는 부제 1. 에 답해보자. 나는 왜 글을 쓰려하는가?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생각을 굳이 덜어내야 하냐고요? 그냥 생각 많은 채로 살면 안되냐고요?
그래서 부제 2.가 뒤따릅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일상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나처럼 생각이 많은, highly sensitive people (or person)이 많지는 않지만, 전 인구의 몇 퍼센트는 된다지.
(앞서 언급했던 책*에 따르면 말이야.)
그런 사람 중 하나로서, 글쓰기가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저의 인생 이야기, 현재 지금 제가 좋아하는 것, 이전에 했던 생각들,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고민하며 읽고 계신 누군가가 계신다면 같이 해보시지요.
*크리스텔 프티콜랭,『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이세진 옮김, 부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