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nama]
우리 집에는 턴테이블이 있다. 턴테이블이 있으니 LP도 있다. 디비디 플레이어가 있고 작은 진열장에 옹기종기 디비디도 꽂혀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이 대충 몇십 권, 그리고 두서없는 주제의 책들이 기준 없이 꽂혀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취생의 집에 있을 법하지 않은 물건들에 신기해한다. 집에 사람을 초대하면 잘해놓고 산다고, 집에서 취향이 느껴진다고, 특색이 있다고, 제법 듣기 좋은 칭찬을 들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생각보다 LP는 자주 듣지 않고 디비디도 책도 다 보지 못했노라고, 그냥 일종의 수집과도 같다고 짐짓 겸손한 척 대꾸하며 속으로 뿌듯해한다.
그렇지만 내 수집이라는 것은 아예 없는 이들에게는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정말 수집가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알량한 소꿉놀이 수준일 뿐이다. 나의 수집, 나의 덕질은 언제나 그래 왔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금사빠였다. 대상은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였지만 어찌 됐든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 쉽게 심취하고 빠져들었다. 한마디로 뭐 하나에 탁- 꽂혀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런 큐피드의 화살이 공부로 향했으면 좋았겠지만, 사선은 언제나 성실히 다른 곳을 향했다.
내가 꽂혔던 것들을 열거하자면 펜, 노트, 영화, 책, 뮤지컬, 토이스토리 스티커, 핸드폰, 옷 등등 다양하다. 무언가에 꽂히면 한동안 내 모든 열정을 그곳에 집중시켜 맹렬히 퍼부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땠는고 하면, 다 금방 식었다. 뭐 하나 대단히 집중적인 덕질에 성공한 것이 없다. 관심사는 계속해서 옮겨갔고 한 번 재미를 보고 나면 미련 없이 다른 이성을 찾는 바람기 많은 정력가처럼 다른 곳에 그 열정을 고스란히 옮겨 쏟았다.
한 가지에만 그 열정을 계속 쏟을 수 있었다면 그게 어느 분야였든 반 전문가는 됐을지도 모른다. 나름의 전문성으로 그걸 업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덕질은 늘 얕았고 그래서 언제나 알량한 수준에서 멈췄다. 내가 모은 물건들은 나의 알량한 수집과 덕질의 결과물이다.
냄비처럼 급하게 팔팔 끓다가 식어버리는 내 성향에 대한 나름대로 심각한 고뇌와 성찰, 자기반성 같은 것을 한 적도 많았다. 어릴 때부터 뭐 하나를 진득하니 해낸 것이 별로 없으니, 내 이런 변덕에 대한 부모님의 신뢰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언제나 금방 싫증을 냈기 때문에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땐 그게 끈기가 부족한 거라고, 근성이 부족한 거라고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이제 나는 어른이다. 그래서 반성 대신 정신승리를 한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은데. 이렇게 흥미롭고 즐거운 게 많은데 왜 하나만 파고 앉아 있어야 해? 그거 하나만 판다고 평생 그걸 내가 완벽히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라며. 또 언제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정신승리가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흡족하다.
나의 성실한 변덕과 덕질에 익숙해진 지인들은 종종 묻는다.
“그래서 다음은 뭐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덕질 거리를 탐색한다. 그리고 내게 ‘알량한 수집가’라는 닉네임을 부여하며 합리화를 한층 견고히 한다. 알량한 수집가의 변명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