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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nama Aug 12. 2021

글 쓰면서 돈 벌기

[Grinama] 오늘도 월급루팡


회사에서 글을 쓰고 있다.     

기왕 쓰는 거 꾸준히 써보자고 마음은 먹었는데 대한민국의 흔한, K직장인인 나는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회사에서는 억겁의 세월 시간은 퇴근을 기점으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한다.

체감으로는 정말 잠깐 늘어져 있었을 뿐인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면 냉정하기 그지없는 충고를 확인하게 된다.


“지금 당장 자지 않으면 내일 좀비 꼴로 회사를 활보하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순종적인 편인 나는 고집부리지 않고 고분고분 잠자리에 든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친 뒤 차 한잔과 함께 노트북을 똥땅 거리는, 바쁜 일상 속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품격 있는 직장인이 되겠다는 나의 다짐과 로망은 매가리 없이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계속 미루다 보니 안 되겠다 싶어 회사에서 한두 줄 끄적거리기 시작했는데, 회사에서라도 쓰니 그래도 글을 쓰기는 쓰게 되고, 또 은근히 스릴도 있어서 요즘은 출근 후 셋팅을 마치면 은근슬쩍 워드 프로그램을 밑에 깔아 둔다.

그러다 쓸거리가 생각나면 쓰고 아니면 말고.     



회사에서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글을 쓰다가 생각이 안 나면 머리 쥐어뜯을 필요 없이 그냥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생각이 났을 때도 일해야 할 때가 더 많아서 생각났던 문장의 반 이상은 까먹고 날려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누가 뒤를 지나갈 때는 재빨리 업무 창을 띄우는 순발력을 발휘해야 함으로 민첩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시험기간만 되면 공부 빼고 세상 모든 일들이 다 재미있어 보이듯이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하는 딴 짓은 새삼 흥미롭고 즐겁다.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잠시 미뤄두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일은 몇 시간 후 잔업을 하며 지금의 나를 탓할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고 호기롭게 시답지 않은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문득, 예전에 무척 감명받았던 친구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유독 회사에서 배변활동이 활발해지는 게 신기해서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 이상하게 회사만 가면 자꾸 똥 마려워.
- 잘됐네.
- 그게 왜 잘된 건데?
- 똥 싸면서 돈 버는 거잖아.
-.....!


월급루팡의 길은 이 얼마나 다채롭고 심오한가. (사실 내 월급은 대도 루팡을 들먹거리기엔 너무나 작고 소중해서 나는 루팡까지는 아니고 월급 좀도둑쯤 되겠다)     


오- 그러니까 나 지금, 글 쓰면서 돈 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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