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nama]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사전적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내게는 딱히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부정적이지 않은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들이 있다.
알량하다, 하찮다, 시답지 않다, 찌질하다, 보잘것없다, 못났다, 대단치 않다 등과 같은 표현들이다.
그런 말들이 내게는 어쩐지 애잔하게 느껴져서, 그런 말들에 애정을 담게 된다.
물론 타인에게 그런 말을 즐겨 사용하면 상당히 실례가 될 수 있고 사회 부적응자로 낙오될 수 있기에 주로 스스로에게만 즐겨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처음부터 그런 말들에 애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그냥 사전적 의미 그대로 그 표현들을 인식하고 사용했었다.
그러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세상만사 다 싫은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싫었던 혼란의 시기를 지나게 되었다.
내가 너무 보잘것없고 찌질하고 하찮게 느껴졌던 그 시절,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수용할 수 없는 내 모습에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더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 혼돈의 시기가 잦아들고 결국 나만큼은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나와 화해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으나 여전히 한 구석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전히 보잘것없고, 찌질하고 못났는데..?’ 라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도달한 타협점은 ‘보잘것없고 찌질 할 때도 많고 못난 점도 많은 그 자체가 나’라는 결론이었다.
나는 당장 대단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나도 모르게 무심코 저지르는 찌질한 짓들도 당장 그만둘 수 없으며 단점들도 당장 고칠 수는 없으니(당장이 아니라 평생일지도 모르고), 그냥 그런 별로인 나를 그대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별로인 나를 인정하기로 한 후부터 어쩐지 그런 말들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스스로가 보잘것없고 못나고 찌질하고 하찮게 느껴지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순간에 그냥 그래 인간은 원래 보잘것없는 존재야, 그래 찌질할 때도 있는 거지 뭐- 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면 어쩐지 어차피 완벽한 존재란 건 없고, 그러니 나도 완벽하지 않은 채로 괜찮다고 위로하는 듯한 애잔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나에게 이런 표현을 덧붙여 말해도 딱히 타인에게 자기애 과잉의 나르시시스트로 보일 일도 없으니 꽤 괜찮다.)
내가 나름대로의 애정을 담아 하는 말이라는 걸 알만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종종 이런 말을 쓰고는 한다.
번지수 잘못 찾은 상사의 짜증에 뭐라 말 한마디 못해 회사 동기와 억울해할 때 '역시 우린 찐따 재질이에요'
하며 능청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주면, 부들부들하던 일이 키득키득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분노의 온도가, 짜증의 무게가 덜어지기도 한다.
팀원들과 모여 회사에 불만스러운 점들에 대해 열심히 토론하다가 팀원 한명이 내게 장난스레 묻는다.
“용기 내주겠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한다.
저는 찐따 재질입니다만…
그냥 또 그렇게 다 같이 웃는다.
나는 오늘도 찐따 재질 입니다만,
그래서 오늘도 나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