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nama]
“보고 싶어.”
수화기 너머로 멋쩍은 목소리가 말한다.
2년 넘게 만난 연인은 더 이상 내게 하지 않는, 그래서 이제는 조금쯤 생소하고 어색한 말을, 어찌하지 못한 조금의 민망함이 담긴 목소리가 말한다.
“너는 안 보고 싶지?”
잠시 흐른 어색한 침묵을 깨고 다시 한번, 민망함에 약간의 장난기를 담은 목소리가 말한다.
나를 30년이나 보고도 아직도 나를 보고 싶어 해주는 목소리가 말한다.
여전히 나를 보고 싶어 해주는 엄마가 말한다.
집을 나와 산지 벌써 6년 차에 접어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회사 때문에 만남의 빈도를 따지자면 당연히 연인보다야 가족이 현저히 적으니 애틋함과 그리움이 쌓이는 쪽이 엄마인 게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내가 보고 싶다는 말이 어쩐지 뻘쭘한 건 어찌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말이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법이라, 연인이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나도 보고 싶어.”라고 쉽게 했을 대답을 “나 회사라니까.”라는 치사한 대사로 받아친다.
바쁜 일상에 치여 가족도 집도 어느샌가 조금 낯설고 먼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고백하자면 여전히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
평일 내내 야근에 치여 이미 어둠이 한참은 내려앉은 귀갓길을 터벅터벅 걸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고장 난 입술이 한마디도 내뱉지 못해 홀로 그 억울함을 서럽게 삼킬 때,
제 때 챙겨 먹지 못한 반찬들이 냉장고에서 썩어 악취를 내뿜으며 나를 원망할 때,
그렇게 신신당부를 들어놓고도 미처 다 챙겨 먹지 못하고 가방 안에서 굴러다니는 홍삼 스틱을 볼 때,
알람을 듣지 못해 기상 시간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소스라치게 놀라고, 시간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
가끔은 여전히, 엄마 앞에 앉아 별수롭지 않은 서러운 일들을 쏟아내며 괜히 징징거리고 싶다.
이제는 나도 어른이니까, 애처럼 징징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나이를 한참 전에 지나왔으니까, 내게 언제나 걱정 어린 말을 늘어놓는 엄마에게 알아서 하겠노라고 허세를 부리지만, 여전히 가끔은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의 여러 파편을 엄마 앞에서 늘어놓고 싶다.
좋은 날보다 좋지 않은 날, 기쁜 날보다 슬픈 날 더 엄마가 자주 생각나서,
힘들 때만 엄마를 찾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 앞에서 볼품없이 힘들고 서럽다는 얘기나 늘어놓고 싶지 않아서,
여유가 없다는 손쉬운 핑계로 연락도 미루는 괘씸한 자식이지만, 여전히 힘에 겨운 어느 날 엄마가 보고 싶다.
괜히 힘들 때 찾아와서 더 귀찮고 힘들게 할까 봐 내 눈치가 보여 자주 연락도, 찾아오지도 못하는 엄마를 알면서도 못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나는 그 보고 싶다는 말에 못내 위로를 받으면서도 조금의 민망함도 감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고 싶다고, 나름의 용기를 내어 말하는 엄마에게
가끔은 나도 보고 싶다는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