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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10. 2024

괘씸죄

그냥 보내주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타들어가는 뙤약볕 아래에서 매미들이 이름 모를 나무 등에 달라붙어 제 짝을 찾기 위해 몸이 부서질 정도로, 듣는 이의 귀가 찢어지든 말든 아랑곳 않고, 맴맴맴 울부짖는다. 나를 봐달라고, 나와 짝을 이루어 이 드넓은 우주에 우리의 흔적을 남기자고, 다음 세대에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자고, 자아도취에 빠진 매미들이 목 놓아 소리 높여 울고 있다. 와, 처절하다. 나의 존재를 이 자리에 각인시키기 위해 너에게 함께하자고 설득하는 기나긴 외침. 너와 내가 몸을 맞춰 우리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만들자고 권하는 생의 의지. 허물을 벗고 매미로 태어나 후손으로부터 다시 태어나기 위해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의지를 불태우며 끝까지, 죽기 전까지, 열과 성을 다하는 매미를 보며 입에 감도는 말이 있다. 너네는 어쩜 너네 생각만 하니? 너네가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게 부끄럽지도 않니? 너네 참 괘씸하다. 질투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방충망에 달라붙은 매미를 쏘아보며 매미에게 괘씸죄를 뒤집어 씌운다.


숨 막힐 정도로 불어닥친 더위에, 우리집을 가득 메운 매미 소리에 지쳐갈 때쯤 너는 나지막이 말한다. "나 간다." 너는 "나 간다."고 거실에서 현관문에 도달하기 전까지 드문드문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결국 이렇게 헤어질 거였다면 진작 헤어지자고 하지, 왜 하필 지금이야. 도대체 왜? 네 옆자리를 사수하며 끝까지 치열하게 집요하게 변하는 사랑의 모양을 다듬으며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우리를 새기기에 적당한 캔버스를 고르고, 밑그림을 그리고, 칠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다시 색을 올려서 온갖 색을 겹겹이 쌓아 올렸는데. 결국 우리가 서로를 위해 서로를 놓아야 한다고? 괘씸하다. 각자만의 이유로 옷을 겹겹이 레이어드 하듯, 우리 그림에도 레이어를 켜켜이 쌓고 있었는데, 결국 이 그림은 미완성으로 끝날 모양이다. 아니, 미완성이어서 비로소 완성되는 그저 그런 그림이 되는 건가? 그래도 다행이다. 작자 미상은 아니어서. 우리만큼은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애석하다. 주변인에게 네가 최고의 파트너라고 자랑하며 유난을 떨고, 애칭을 붙이고, 너의 고운 발바닥에 스마일을 새기며 웃음보가 터졌었는데. 한 번이라도 네 양쪽 볼에 보조개가 움푹 패일 수 있도록 너를 웃게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는데, 너는 나에게 헤어짐을 말한다. 그래서 마침내 헤어짐을 고하는 네가 참 괘씸하다.


20세기에 태어난 우리는 첫 만남에 서로를 알아봤고 시간이 흘러 각자 옆에 빈자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 자리를 놓칠세라 빠르게 점유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며 복잡다단한 시간을 지나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강산이 변하기 전에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겨 굳건히 버티고 있던 관계의 빙산이 쩍 하고 갈라졌다. 우리의 대화 뒤엔 기후재난이 우리를 덮칠 거라며 야단법석을 떠는 기자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당장은 우리가 비상사탠데.’ 하며 TV를 세차게 끈다. 현관문이 닫히면 다신 돌아오지 않을 너의 뒷모습을 눈으로 매만진다. 하지만 진녹색 문은 보란 듯이 스무스하게 열린다. 너무 쉽게 열리는 문, 너무 쉽게 떠나는 그에게 괘씸죄를 적용한다. 닫힌 문은, 닫힌 그는 대답이 없다.



가수: 오지은

노래: 고작

https://youtu.be/w5KQyQGbA-E?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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