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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 Oct 15. 2024

70만 원어치 취향 발굴기

다시 아이폰 유저가 되고 싶은 이유

 내가 70만 원이라는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망설이는 이유, 그럼에도 결국 쓰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쓰려고 한다.


 얼마 전, 3-4년 정도 쓴 아이폰 미니 12의 고장으로 갤럭시 s24를 큰맘 먹고 구입했다. 아니, 사실 큰 맘까지 먹은 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아이폰 유저였으니 갤럭시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막연히 애플 제품의 유행이 너무 만연해서 그 흐름을 반하는 길로 가고 싶다는 일종의 반항심 같은 것, 또 삼성을 쓰는 사람만이 극찬하는 삼성페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능성에 호기심을 갖고 갤럭시 유저가 된 것도 어느새 5개월.


 그 사이 나는 쓰던 12 미니를 아예 보내준 것도 아니었다. 와이파이가 아닌 곳에서는 쓸 수 없는 데다 배터리 효율이 70 퍼대로 떨어진 공기계를 뭣하러 계속 들고 있었나, 하면 바로 카메라 때문이었다.


 갤럭시 카메라가 가진 특유의 색감, 화질, 감성은 내가 사물, 현상,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거리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순간을 그대로 포착하기에 갤럭시는 그간 애플 유저로 지내온 나에게 조금 낯선 도구였다. 그래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일명 ‘투폰체제’로 다녔다. 근데 이 투폰이라는 것도 실은 아이폰을 가진 사람이 더 감성 있는 사진을 위해 예전 모델의 아이폰, 이를테면 se 등을 구입해서 에어드롭이라는 기막힌 연동성을 활용하는 이들에게 퍼진 문화인데, 갤럭시를 쓰면서 아이폰 카메라를 갖고 싶은 나에게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사진을 보내는 작업은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왜인지 인스타에는 아직까지 ‘나에게 보내기’ 기능이 없어서 아카이빙용 부캐 계정을 통해 주고받는 방식으로 지내왔다.


 오로지 카메라만을 위해서 이 짓을 한다는 점이 매우 우습기도 하지만, 이 카메라는 단순히 sns용 ‘잘 찍은 사진’만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나의 창작물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 쓰다 보니 아이폰 12 미니를 그대로 쓰는 것이 가장 좋았을 뻔했지만 그건 고장을 낸 나의 책임이자, ‘최대 58만 원’이라는 수리비에 겁을 먹고 잠깐 갤럭시에 한눈을 판 내 잘못이다.()


 이 투폰체제에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낀 나는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생각에 자꾸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은,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장만한 새 휴대폰을 뒤로하고 다시 큰돈을 들이는 것에 대한  모종의 죄책감이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아이폰으로 바꾸지! 혹은 새 폰 사지 말고 바로 수리하지! 같은 생각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럼에도 단념할 수는 없어서 이 고민을 조금 더 풀어헤쳐보기로 한다. 갤럭시를 쓰다 보니 느낀 장점과 그간 그리웠던 아이폰의 장점을 '지극히 나의 기준으로' 정리하다 보면 70만 원을 투자할지 말지가 판가름 나지 않을까 싶다.




우선 갤럭시(s24)의 장점! 사실 친구가 갤럭시를 쓰는 것이 뭐가 좋으냐고 물었던 초창기에, 스스로 ‘삼성페이’를 당당하게 외치고 그 뒤에 생각나는 것이 잘 없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시간이 조금 흘렀기 때문에 추가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써본다.


1. 삼성페이 : 확실히 결제가 굉장히 빠르고 간편해서 좋다. 휴대폰 화면을 슬라이딩해서 지문인식을 하는 그 순간 패드에 갖다 대면 정말 5초 만에 읽힌 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알뜰교통카드를 쓰는 나로서는 카드를 계속 들고 다니다 보니 지갑 없이 휴대폰만 챙기면 되는 삼성페이의 장점이 약간 옅어진다. ‘휴대폰만 들고 다니면 되는’ 점은 지금과 같이 카드지갑형 케이스를 쓰기만 해도 가능한 부분이다 보니, 1등 장점이긴 하지만 그 강력함의 정도는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이다.


2. 통화녹음 & AI 요약 기능 : 아이폰을 쓰면서 아쉬웠던 것이 중요한 통화를 하거나 재밌는 통화를 했을 때 녹음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갤럭시 s24는 통화녹음은 당연하고 녹음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할 수 있다. 심지어 AI가 요약도 해준다! 정확도는 살짝 떨어지지만 긴 강의 혹은 통화 내용을 빠르게 정리하고 싶을 때 굉장히 유용한 기능이다. 서울시 청년 사업의 일환으로 재무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때 양해를 구하고 녹음했던 것을 이 텍스트 변환과 AI 요약 기능을 활용해서 언제라도 보기 쉽게 잘 정리해 둔 기억이 있다. 또 가끔 남자친구랑 통화하고 녹음한 내용을 킥킥대면서 돌려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있어서 좋은 기능’이긴 하지만 자주 쓰지는 않아서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3. 통역 기능 : 최신모델을 구입한 이유 중 하나, 이 기능에 혹했던 것도 있다. 초반에는 너무 써보고 싶어서 통화 중에 남자친구한테 영어로 말해보라고 하고 번역을 어떻게 해주는지 보면서 “진짜 신기하다!”를 연발했었다. 근데 뭐 외국인이랑 통화할 일이 전혀 없으니 그렇게 잠깐 놀이용으로 써먹은 것 외에는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기능이다 …


4. 안드로이드 체제 : 아무래도 아이폰에는 설치되지 않는 게임이나 어플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점이 궁극적인 차이이긴 하다. 하지만 아이폰을 쓰면서 단 한 번도 필요한 어플을 깔지 못해서 불편했던 적이 없기 때문에, 갤럭시를 쓰면서도 오 이게 되네? 의 순간이 자주 찾아오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오 이게 안되네 … 가 더 많았던 것 같다)


5. 유료 폰트 사용 : 마음에 드는 폰트를 구매하면 그 적용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점이 좋다. 각종 앱 내에서도 해당 폰트로 글씨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귀여운 폰트를 구매한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귀여운 점이랄까. 하지만 이것 역시 아이폰 기본 글씨가 가장 좋은데 그러지 못해서 유료 폰트를 구매한 케이스이므로 결국 애플 감성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는 걸 증명하는 부분!

 

6. 예쁜 외관 : 기존의 갤럭시의 투박한 디자인과는 다르게 s24는 ‘아이폰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결국 예쁘고 슬림하고 그립감 있게 디자인된 것이 애플 감성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디자인은 아이폰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7. 국산품 : 국내 기업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 …


그 외 장점은 크게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적어둔 장점마저도 ‘하지만’을 덧붙여 장점은 장점인데 큰 장점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ㅋㅋ)




그렇다면 아이폰(미니 시리즈)은 어떨까?


1. 카메라 :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 갤럭시로는 구현해 내기 어려운 특유의 감성이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으나 일반 사용자로서 느끼는 차이점을 말해보자면, 화질이나 줌인 정도는 갤럭시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 예를 들어 s24는 최대 30배, 12 미니는 5배 확대가 가능하다 - 아이폰만의 색감이나 뭉개지는 질감 같은 게 좋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취향을 담고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꽤 큰 차이로 와닿아서, 갤럭시만으로 외출을 할 때는 사진을 잘 안 찍게 된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나 인스타에 필요한 소스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창작자를 꿈꾸는 나에게 이 사소한 차이가 꽤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바로 아이폰을 다시 구매하고 싶어진 결정적 계기다.


2. 컴팩트한 사이즈, 무게 :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아이폰 중에서도 ‘미니’ 여야만 하는 이유, 바로 가볍고 작은 사이즈다. s24가 그렇게 크고 무거운 기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8에 이어 미니 12를 썼던 나에게는 손과 손목에 꽤 부담을 주는 것이었다. 한 손에 착 감기지 않는 그립감, 휴대폰을 ‘들고 있다’라는 감각이 선명한 무게 때문에 자꾸 아이폰이 그리워진 것도 있다. 난 작은 게 좋아.


3. 애플 제품 간의 연동성 : 블로그를 올리든, 그림을 그리든, 아이패드로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사진을 주고받는 것에 에어드롭만 한 게 없다. 찍은 사진을 곧바로 전송하고 편집하고 다시 내려받는 과정이 간단할수록 작업이 더 즐거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4. UI 디자인 : 배경화면, 기본 폰트, 메시지, 앨범 등등 아이폰만의 UI가 트렌드에 활용되는 세상이다 보니 콘텐츠를 만들면서 어떤 캡처 하나만으로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잘하지는 못해도 디자인에 민감한 사람으로서 다시 아이폰 유저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선명해지는 것도 같다.


5. 그 외 : 이모티콘, 인스타 스토리 등등 아주 미묘-한 차이들이 있다. 말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를 놓고 봤을 때 이게 더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모먼트를 ‘나의 경우’ 아이폰에서 더 자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취향의 문제인 것이다. 다른 것을 써보고서야 오히려 확실해지는 나의 선호를 발견한다. 아이폰이 더 좋은 이유에 ‘콘텐츠’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걸 보니, 창작자가 되고자 하는 나의 일상과 작업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이 70만 원은 아까워할 돈이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이미 13 미니 미드나이트 (703,100₩)를 쿠팡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있었다. 산다면 무엇을 살지까지 정해놓은 상황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막연한 이유만으로 갤럭시를 사고서 결정을 번복한 것처럼 똑같은 실수를 범하기 싫었고 내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이유를 파헤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남들이 써서, 좋아 보여서, 유행이라서 쓰기 시작했던 것들에서 나만의 이유를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내 것이 된다. 그러니까 남들이 쓴다고 해서 써보기 시작하는 게 나쁜 것이 아니고, 써보니까 잘 맞지 않는다고 번복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쓰던 갤럭시는 깨끗이 정리해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어야겠다. 놓지 못하고 있던 아이폰 12 미니도 이제는 보내줄게…. 13 미니를 사들일 70만 원에 보탬이 되어주렴.


오늘도 이리저리 뒤집히면서 내 취향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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