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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 Nov 05. 2024

일상에서 일상으로

11월의 글쓰는 밤

- 일자 : 241105

- 장소 : 서울 종로구

준비해두신 간식과 함께


 이곳은 종로구의 한 작업실, 평소 동경하던 분의 글쓰기 모임에 와있다. 차분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따뜻한 캐모마일 차 한 잔이 놓여있는 이곳에서 나는 매일 보고 느끼던 똑같은 것들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을 떠나온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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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의 주최자 ‘일오세’님은 성수의 한 팝업 행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분으로, ‘일요일 오후 세 시’를 줄인 바로 그 이름에서부터 나는 이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치열했던 지난날, 그럼에도 늘 자신을 가꾼 일요일 오후 세 시 즈음에 품은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고 싶은 소망’이 담긴 이름이라고 한다.) 행사는 홈라이프를 공유하는 한 커뮤니티를 알리는 목적으로 기획된 듯했고, 집을 ‘유별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전시장에 일부 옮겨두어 취향도 감성도 다른 여러 세계를 단번에 엿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일오세님의 작업실이었을 것이다. 아마 방문객 대부분의 눈길을 사로잡은 부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그곳에는 자신만의 생각을 골몰히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나이테가 있었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소품 하나, 쪽지 하나, 그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었고, 그것은 공간의 주인공이 살아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디자인적인 배치, 색감, 인테리어도 멋있었지만, 그 모든 걸 떠나서 하나의 공간이 다 채워질 만큼 확실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내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언젠가 내 작업실이 생긴다면 이런 느낌이면 좋겠어, 하고 생각했다.


 전시장을 나와 찍어둔 사진을 다시 구경하면서 일오세님을 팔로우하기로 마음먹었다. 얼굴도 본명도 모르면서 단지 공간만으로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 건 놀라웠다. 그리고 그 동경의 대상이 바로 지금 내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 어떤 우연에 의해, 동시에 자신의 의지로 인해 만나게 되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일오세님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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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 우리는 짧게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다른 분들의 소개와 소개 사이 찰나의 순간에 나는 내가 이 모임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떠올렸다. 나를 이끌었던 어떤 상황적인 단어들 - 성수의 팝업, 인스타그램 스토리, 낙산공원 등 - 을 머릿속에서 굴려보다가 결국 내 차례가 되어서는 ‘이곳에서 함께 글을 쓰고 싶은’ 본질적인 이유가 튀어나왔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평소에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서 쓰는지에 따라 글의 느낌이 달라지더라고요. 이런 색다른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해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말을 끝내고 나서야 ‘아, 내가 그래서 여기에 와있구나’ 하고 조금 놀랐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대단한 각오, 무한한 시간, 완전히 낯선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여유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나의 글쓰기는 다름 아닌 11월의 화요일, 서울 종로구 골목 어귀에서 재생되고 있다. 

 

 크나큰 결심을 하거나 먼 길을 떠나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일상과는 또 다른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누군가는 굳이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먼 곳까지 글을 쓰러 가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굳이 들이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누구보다 새로운 자극을 원하면서도 한 번의 실행까지는 사소한 걱정이 많은 사람으로서 이런 작은 결심들이 만들어내는 기회가 나의 테두리를 넓혀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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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살이 7년 차,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동네가 많다. 이렇게 굽이굽이 오르막길이 나있는 동네를 걸어본 게 얼마만인지. 더 펼쳐보지 않으면 딱 접힌 만큼만 내 세상이 된다. 일상에서 일상으로, 한 달간 여행자의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해야지. 


작업실 앞에서 내려다 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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