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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피 Sep 21. 2021

나는 보험 없이 살기로 했다

내가 보험을 해지한 이유

얼마 전,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보험을 과감히 해지했다. 보험을 해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이 결정을 하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나름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다.


예전에 한 방송에서 모 변호사가 자신은 보험을 하나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방송에서는 보험은 사기라고까지 했다. '너는 돈이 많으니까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없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하네'라고 생각했다.


대학 재학 중, 미리미리 준비를 해둔 덕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취업을 했다. 이제 월급을 받는 삶을 살겠구나. 내 돈을 잘 관리하기 위해 지출부터 관리하기로 하였고 심사대에 가장 먼저 오른 항목은 보험료였다. 어릴 적 누구나 그렇듯 아무것도 모른 채 어머니 지인에 의해 가입한 보험을 다시 살펴봤다. 어떤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 알아보던 차에 알고 지내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보험을 판매하는 친구였는데 나름의 신뢰가 있어서 그 친구를 통해 전체적으로 보험을 '리모델링' 했다.

그 친구에 따르면 암, 뇌졸중 등은 기본이고 내가 아플 때 내 가족이 무너지지 않을 모든 방어를 해놨다고 했다. 보험은 많이 들 필요가 없다면서 넌지시 자신은 실적을 위해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어필도 했다. 그러면서도 투자 명목의 이런저런 보험을 권해왔다. 지금에서야 투자의 기본도 모르는 친구가 추천하는 상품을 가입했던 게 참 후회된다. 투자는 수수료가 높은 보험으로 하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몇 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투자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고수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의 투자철학을 가지게 되었고 돈에 대한 시각도 성숙해졌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부자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내 지출 내역을 보다 보니 보험료로 지출되는 비용이 상당함을 발견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돈은 나가는데 나에게 경험자산을 주는 것도 아니고 물건이나 만족감을 주지 않는 유일한 지출, 보험료였다. 믿고 따르는 투자 유튜버들이 보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찾아보고 스스로도 고민을 하다 보니 보험을 해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보험은 사기라고 했던 그 변호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를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조금 더 극단적으로, 미리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보험이 사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험이 어느 정도 사이비 종교 같다는 생각은 한다.

친구에게 연락해 모든 보험을 해지하겠다고 했다. 친구는 자신의 고객 사례를 들려주며 이런저런 겁을 줬다. 예상된 반응이었다. 친구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그때 깨달았다. 보험을 파는 사람은 진심이다.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려는 것을 넘어서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보험이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보험이 없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을테니까.


나는 친구에게 보험을 해지해야 하는 이런저런 이유를 말했다. 내심 친구가 탄탄한 논리로 받아쳐주길 바랐다. 내 생각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걸, 내가 어느정도는 잘못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가 알려줬으면 했다. 

내 논리가 친구의 것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친구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느낀 그 순간 나는 실비, 암보험, 운전자보험을 제외한 모든 보험을 해지했다.

이미 낸 돈에 비하면 손해가 막심했지만 더 늦기 전에 해지한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험을 해지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보험은 무조건 고객이 손해다.

보험상품은 보험계리사의 철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진다. 마치 카지노를 상대로 절대 승리할 수 없듯이 대부분의 사람은 보험사를 상대로 이익을 얻기 힘들다. 한두번 이익을 얻을 수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보험료의 3% ~ 20%는 사업비 명목으로 우리의 보험료에서 빠져 바로 보험사의 배를 불린다. 이 대가로 우리가 보험설계사라고 부르는 보험모집인은 우리가 내는 월 보험료의 5배 이상을 인센티브로 가져간다. 보험이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이라면 왜 보험설계사들은 막대한 인센티브를 받고 해외여행을 갈까? 왜 보험설계사를 모집하는 SNS에서는 그 가치가 아닌 금전적인 베네핏을 내세울까? 왜 이 복잡한 상품을 판매하는 데 아무런 자격 없는 사람들을 모집할까? 보험설계사 중에 재테크에 관해 나와 5분 이상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2. 내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내가 운이 좋게도(?) 중대한 질병에 걸려 5천만원의 보험금을 탈 수 있다고 하자. 과연 그게 나에게 이득일까? 보통 사람은 50세가 넘어서야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한다. 보험의 납입기간은 20년이다. 즉, 30세에 보험에 가입했다면 50세까지는 매월 보험료를 내야 하고 그전까지는 크게 아플 일이 없다.

5천만원짜리 보험의 보험료를 월 3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20년 동안 매월 3만원씩 내면 총액은 720만원이다. 그럼 보험금을 타면 무조건 이득 아니냐고? 아니다. 우리는 월 3만원으로 투자를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미국 S&P500의 지난 2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0.57%이다. 만약 이 보험료를 매월 S&P500지수에 투자한다면 20년 뒤에는 얼마일지 추측해보라. 

지난 20년을 기준으로 백테스트해봤다. 매월 적립식으로 3만원씩 미국 S&P500을 추종하는 ETF, SPY에 투자할 경우(복잡해보여도 보험료 내는 것보다 간단하다) 20년 뒤 이 돈은 7,440만원이 된다. 내가 아파서 받을 수 있는 보험금보다 큰 금액이다. 만약 20년 납입을 마치고 10년이 지난다면? 5천만원짜리 보험을 위해 냈던 돈으로 만들 수 있는 돈은 약 1억 9,300만원이, 20년년 납입을 마치고 20년이 지난다면 약 5억원이 된다(연 10% 기준)*.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리의 마법에 힘입어 엄청나게 불어난다. 보험사는 내가 낸 돈을 다른 곳에 계속 투자할 수 있다. 투자의 기본 중의 기본은 불필요한 소비를 통제하는 것이다. 보험료는 불필요한 소비작 될 수 있다.

* 백테스트 출처: https://www.portfoliovisualizer.com/


3. 나는 건강할 계획이다.

보험금은 내가 아플 경우에 탄다. 가장 흔한 질병은 암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 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4%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암에 걸리지 않을 확률은 무려 60%가 넘는다. 다른 질병은 암보다 걸릴 확률이 낮다.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보험에 내야 했던 돈은 그냥 내 돈이다. 37.4%가 아닌 그 반대에 배팅하는 것이 유리해보인다. 명심하자. 보험은 불안함을 판다.

아직은 젊지만 그럼에도 나는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고 담배도 하지 않는다. 돈을 써가며 꾸준히 운동을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한다. 건강검진을 해도 또래보다 훨씬 건강하다.

건강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아픈 것도 대비하겠다고 보험을 가입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보험 없이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4. 귀찮다.

몇 년 전, 부모님이 아팠을 때 보험금을 타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픈 것을 증명해야 하고 심지어는 아픈 사람이 직접 가서 처리를 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보험금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당하게 아픈 것(?)을 증명하기 위해 꽤나 시간을 써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안 하는데 보험금 때문에 이런저런 일로 신경 쓰는 게 개인적으로는 정말 싫다. 너무나 귀찮다. 알다시피 보험사는 최대한 보험금을 안 주거나 적게 주는 것이 미덕인 집단이다. 자선단체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불과하다. 담당자가 빨리 보험금을 주고 싶어도 사내에 이런저런 결재 절차가 있기 때문에 나도 그에 맞는 자료를 제공해줘야 한다.

이런 집단을 대상으로 싸우는 데 내 아까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험금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보험 혹은 의료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나처럼 보험을 해지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가족력에 의해 질병이 발생할 확률은 사람마다 다르다. 갑작스레 아파서 큰돈이 나갈 수도 있다. 보험은 이런 리스크를 헤지(hedge)하고 좀 더 맘 편하게 일상에 집중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험이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모든 선택은 확률의 문제다. 그냥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지인에 의해서 약관도 읽어보지 않고 보험에 가입하거나 혹은 자신이 어떤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보험에 대해 꼭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보험이 정말 내게 필요한 보험인지 고민해보자. 선택은 보험설계사가 아닌 본인의 몫이다. 아까운 돈 보험사와 설계사의 배를 불려주는 데 낭비하지 말자.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그 돈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계좌를 따로 운영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프면 그 계좌에서 사용하고 안 아프면 계속 돈을 모아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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