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희귀해지는 현대인의 '딥 워크' 능력
약속시간에 일찍 도착해 누군가를 기다릴 때, 잠시 시간이 떠버렸을 때, 이동할 때, 쉴 때 우리는 스마트폰을 본다. 자극적인 알고리즘에 이끌려 그저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블랙미러를 쳐다본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수십 개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내비게이션 앱 없이도 길을 찾아가던 인간의 능력은 쇠퇴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유튜브 쇼츠를 하염없이 넘기고 몰입이 필요한 일에 뛰어들기를 망설이는 내 모습을 어느 순간 직시하게 되었다. 재밌는 것이 더 많아진 것 같지만 내 삶은 더 재미가 없어졌다. 자연스레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하는 답답한 고민을 지속하다 우연히 읽게 된 『딥 워크』라는 책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제안해줬다.
『딥 워크』의 저자 교수 칼 뉴포트는 산만한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희귀해지는 '딥 워크' 능력을 갖는 것이 탁월한 성과를 내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컴퓨터공학과 부교수인 그는 남들보다 더 적은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딥 워크를 통해 자신의 기대치를 넘어설 만큼 다양한 논문 및 저술 활동을 성공적으로 해왔다.
딥 워크는 단순히 오랫동안 집중하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일을 몰입하여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 저자는 저녁시간에는 일에 신경을 끄라고 얘기한다.
"나는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삶이기 때문이다." - 위니프리드 갤러거
현대인들, 그리고 나는 '딥 워크' 능력을 잃어 정작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대응한다. 분주한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한번에 다양한 일을 처리하려 애썼다. 불안해서 바빴다. 그러나 분주함은 오히려 내 무능력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지식 노동자들이 가치를 증명할 더 나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갈수록 분주한 모습을 보이려 든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생산성의 대리 지표로 쓰이는 분주함: 생산성과 가치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지표가 없는 상황에서 지식 노동자들이 산업시대의 지표로 퇴행하여 겉으로 일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이려 드는 것. - p64
현대사회에서 분주해 보이는 사람은 대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과를 내는 것은 몰입이다. 이 책을 읽고 괜히 고무된 나는 의식적으로 메신저나 메일에 곧바로 답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며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최대한 미루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을 훨씬 덜 하고 있음에도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 오직 중요한 일만이 성과에 영향을 준다.
저자는 본인의 경험과 다양한 연구사례를 통해 딥 워크를 실행할 수 있는 4가지 규칙을 공유한다.
딥 워크를 할 장소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거창한 제스처), 구체적인 시간도 정하라
작업 방식을 정하라: 인터넷 사용금지, 20분당 작성한 글자 수 등(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함)
커피, 산책 등 본인의 몰입을 도울 수 있는 보조 수단을 활용하라
우리가 가장 못 견디는 것은 지루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루함이 필요하다. 지루함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집중력 훈련을 할 수 있으며 진짜 우리의 생각과 만날 수 있다. 지루함을 못 견디며 이런저런 알고리즘에 우리의 뇌를 맡기는 습관은 우리의 뇌를 망가뜨리며 이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산만함에 의존하는 버릇을 버리지 않으면 집중력을 기르기가 어렵다. 운동선수들이 훈련 시간 외에도 몸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듯이 나머지 시간에 조금만 무료해도 견디지 못하면 가장 깊은 수준의 집중에 이를 수 없다. -p151
나스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두뇌가 즉각적인 산만함에 익숙해지면 집중하고 싶을 때도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더욱 분명하게 말해서, 5분 동안 줄을 서거나 식당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처럼 무료함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나스가 말한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로 두뇌가 바뀐다. -p152
무료함을 받아들이자. 쇼펜하우어도 인간은 고독할 때 비로소 자신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요즘 단 10분 집중하기도 부담스러워졌다. 저자는 인터넷(산만함)에서 멀어지는 것을 권고한다. 산만한 삶을 살다가 필요할 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는 삶을 살다가 가끔 산만함을 즐길 것을 제안한다.
대다수 사람에게 소셜 미디어는 중요한 목표 달성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위험하다. 퇴근 후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놓음으로써 무의미하게 소셜 미디어를 헤엄치는 것을 경계하자. 인생에 중요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SNS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것 같다. 여가 시간에는 계획을 세워 나를 위한 활동들을 하는 것이 좋다.
체계적으로 즐기는 취미는 이 시간들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재료다. 구체적인 목표에 따른 구체적인 활동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베넷식 독서, 즉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에 계획적으로 고른 일련의 책들을 읽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물론 운동을 하거나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p199
2007년 37시그널스라는 소프트웨어 기업은 주 4일 근무제로 변경하는 실험을 한다. 결과는 일하는 시간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더 많은 일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알고 보면 차이는 피상적 작업에서 생기는 것이었다. 프라이드의 설명을 들어보자.
하루에 여덟 시간이라고 해도 내내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적인 일과를 채우는 수많은 회의와 중단 요소, 웹 서핑, 사내 정치, 개인적 일 사이에 두어 시간만 제대로 일할 수 있어도 다행이다.(생략)
-p205
직장인이라면 잘 생각해 보아라. 직장에서 내가 사용하는 시간이 과연 얼마만큼 중요한 일에 투자되고 있는지. 내가 오늘 들어간 미팅이 과연 꼭 필요한 미팅이었는지. 쓸데없는 피상적 작업을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딥 워크를 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딥 워크가 내 영향력을 결정한다.
저자는 피상적 작업을 차단하기 위해 5시 30분 전에는 일을 마치고 시간을 잡아먹는 일들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거절할 것을 추천한다. 또한 연락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라고 말하며 중요하지 않은 이메일에는 답장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
"사소한 나쁜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는 습관을 길러라.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바꾸는 중대한 일을 할 시간을 결코 찾지 못한다." -p238
단순한 메시지가 꽤나 임팩트 있었던 책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싶으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앞으로 나는 사사로운 일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며 내 일과 내 인생에 중요한 일들에 많은 시간을 쓸 것이다.
장담하건대 산만한 대중을 떠나 집중하는 소수의 대열에 합류하는 일은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