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연일 놀라운 뉴스들이 전해지다. AI 서비스들을 활용해 패턴이 있는 단순업무를 대체한다. 이미지나 음악, PPT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고 글을 대신 써주며 화면을 통해 내가 보는 것을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내 음성을 닮은 가상의 성우를 만들어 콘텐츠를 제작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자연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된다.
AI가 대체할 미래.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건 명확하지만 어떤 형태로 바뀌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케터로서 내 업무도 변화할까? 더 나아가 AI가 글을 써주고 자료를 만들어주는 것이 과연 나에게는 좋은 일일까?
AI가 가져다 줄 생산성 변화는 그 수준을 가늠하기는 어려워도 실체는 너무나 뚜렷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몹시나 두렵다. 그저 열심히 자료를 만들고 이에 필요한 스킬을 연마하면서 성장해 온 우리 직장인들, 구체적으로는 마케터들의 진짜 실력이 드러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PPT를 잘 만들거나 기획서를 잘 쓰는 강점을 가진 마케터가 아니라 진짜 고객을 이해하고 문제 정의와 해결방식, 실행력까지 갖춘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는 그의 저서 『느림』에서 현대인이 기술혁명을 통해 변화한 세상에서 '속도의 악마'에 지나치게 탐닉하고 있고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SNS와 숏폼에 중독된 지금의 사회에서 AI의 존재는 단순히 생산자의 존재를 대체할 것이라는 것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컨닝 페이퍼를 만들다가 내용이 정리가 되어버린다거나 상사가 시킨 자료를 만들기 위해 노가다성 업무를 하다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성장한 경험. 더 이상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외울 수도,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잃은 현대인처럼 앞으로 더 게을러질 마케터들의 능력은 오히려 퇴화할까? 차라리 노가다성 업무라도 하면서 인풋을 늘리는 게 낫지 않을까? 글을 직접 쓰지 않는 인간에게 사유의 과정이 생략되지 않을까?
특히나 생산성이 낮기로 유명한 한국의 업무환경에서 AI가 가져다 올 변화가 걱정되기도 한다. 더 많은 정보 속에서 오히려 정보를 찾지 않거나 정작 필요한 자료는 오히려 구하기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AI라는 편리한 툴을 통해 오히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게 되지는 않을까.
당장은 AI에 놀라고 또 이를 업무에 적용하는 세상에 살게 되겠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AI가 아니라 마케터와 기획자들은 어떤 능력을 개발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막상 AI서비스를 이용해보면 24년 6월 현재까지는 마케터에게 별다른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느끼긴 어렵다. 결국 생각은 인간의 몫이므로.
혹자는 말한다. 앞으로는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마케팅에서는 진짜 마케팅을 하는 마케터가 그렇지 않은 마케터를 대체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