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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Milk Apr 20. 2023

(책리뷰)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노수경 옮김 / 브래디 마카코 지음(Brady Mikako)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부터 대략 한 달 전에 경주를 다녀왔다. 경주에서 머문 호텔에 입점해 있는 큰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됐다. 일단 제목부터 진보적인 성격의 이야기 전개가 예상되었다. 무엇보다, 영국 이란 나라에 대한 애정과 기억이 있기에 현재 영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정치적 전환기를 다룬 책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젊은 시절 영국의 서브 컬처를 동경하여 영국으로 이주한 일본 여성이다. 그리고 아일랜드 사람과 결혼하여 현재 영국 브라이턴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본업은 어린이집 교사이며 그녀는 자신이 프라이빗 어린이집과 국가에서 운영하는 탁아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낸다. 첫 5장 정도를 읽고서 매료되어 책을 구매하기 위해 서점에 문의했으나 남은 재고가 없어 너무 아쉬운 마음에 서울로 올라와 자주 방문하는 중고 서점에서 운 좋게 찾은 후로 몰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영국의 긴축정책(Austerity)이 어떻게 저변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삶을 바꾸고 있는지, 저자의 시점에서 서술해 나간 사회 코멘터리 에세이다. 아마도 영국의 브렉시티와 긴축 정책에 대한 관심 혹은 기본 지식 없이 읽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을까 싶지만 저자는 쉬운 언어로 친절히 영국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때문에 현재 유럽의 상황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의 정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추천하는 도서이다. 


    영국의 긴축정책에 관한 한 개인의 관찰과 그녀 자신의 여정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내가 살았던 영국에서 경험한 영국인들과 영국 사회는 영국의 특정 계급의 특정한 세상이었다는 것을 한국에 돌아와서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국에서 다니던 대학교를 졸업했던 해에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브렉시트(brexit)가 논의되고 실제로 레퍼렌텀(referendum) 즉, 국민투표가 실시 됐었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 유럽 연합(EU)에서 탈퇴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긴축정책은 브렉시트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영국의 보수당이 정권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지만 브렉시트와 긴축정책 그리고 팬데믹 기간이 겹치는 시기 간 지속되면서 영국 사회는 내가 알던 사회와는 동 떨어진 느낌이었다. 영국 사회는 계층이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서 각자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이 확실해서 굳이 상류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중산층들과 노동계층들이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던 영국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장치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복지 시스템들이 경제 우기와 정치적 규제 때문에 해체되기 시작하고 이제는 워킹 클래스가 아닌 언더 클래스(underclass), 워킹 클래스 보다도 아래에 있는 계층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분노하게 했던 부분은 소위 리버럴 백인 엘레트들이 PC(Political correctness)를 인식하여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무식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소셜 레이시즘을 남발한다는 부분이다. 영어 발음 가지고도 그 사람의 배경과 클래스를 알 수 있는 영국영어. 발음 하나로도 상류층, 중산층 그리고 하류층을 구분할 수 있는 사회에서 자신보다 못한 언어와 발음을 구사하는 언더 클래스 그리고 워킹 클래스의 영국인들에게는 서슴없이 차별 혹은 언어적, 차별적 폭력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영국과 유럽의 긴축 정책으로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이들은 워킹 클래스보다도 아래에 있는 언더 클래스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다. 얼마 전에도 뉴욕 타임스에서 영국 빈민촌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쉼터들이 문을 닫으면서 오히려 그 지역 청소년 범죄가 증가했고 아이들이 갈 곳을 잃자 자제력을 잃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야기였다. 세계 최국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영국. 한때는 지지 않는 나라로 군사력, 경제 그리고 복지의 위상을 뽐내던 영국이란 나라의 빈곤율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기가 막힌 것은 난민이나 워킹 클래스 이민자들 조차 영국의 언더 클래스 이름바 차브(chav)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아이가 차브스러운 엑센트와 차브스러운 행동 그리고 그들의 태토(attitude)를 배우는 것이 싫은 나머지 다시 역차별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이렇든 저렇든 국가에서 운영하는 탁아소가 그대로 유지되어야지만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이 하루 동안 무언가를 배우고 무언가를 먹고 정상적인 시스템 안에서 케어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국가의 긴축 정책으로 인해 탁아소가 분열되다가 결국에는 문을 닫고 푸드 뱅크(food bank: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채소, 과일 그리고 통조림등 음식 재료를 나눠주는 비영리 단체/제도)로 대체되는 상황에 대해서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에서 표현되는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와 그곳에서 고통받는 아이들과 여성 그리고 혼자가 돼버린 노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연 이런 사태를 두고 우리가 안심할 수 있을까? 저 바다 건너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나와 다른 문화와 사회 그리고 언어를 쓰는 국가의 이야기가 아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추운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차갑게 다가온다. 국가가 긴축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때도 있지만, 왜 항상 가난한 이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 것인지 의문하게 된다. 저자는 보수 성향의 타블로이드들이 원색적인 비난으로 만들어낸 차브와 언더 클래스 영국인들의 이미지로 인해 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이들이나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싱글 맘, 싱글 대디들의 삶까지 비난으로 고통받는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보수층의 긴축 정책을 비판하다가도 결국에 자기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동물을 마뎌버린 과거 노동당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난한다. 그저 돈만 쥐어주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장시간에 걸쳐 반복되어 국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계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흡입력이 뛰어난 책이었기에 조금은 어둡고 암담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쉽게 이해하고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국가가 긴축 정책을 선택하되 약자에 대한 조금의 배려가 있었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독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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